장언원(張彦遠: 815~879)은 당나라 후기의 명문 귀족으로 집안에 많은 서화를 수장하고 있었으며, 회화의 감식과 고증에 뛰어났다. 장언원은 그림이 교화를 완성하고 인륜을 도우며 자연의 변화를 연구하여 그 이치를 헤아리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서화용필동론(書畫用筆同論)을 통해 창작의 측면에서 글씨와 그림이 근원을 같이 한다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는 총 10권이며, 전한(前漢)부터 만당(晩唐)까지 1,000년이 넘는 기간을 대상으로 서술하고 있다. 내용은 크게 화론(畫論)과 화가전(畵家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3은 총론에 해당하며, 다양한 화론을 수록하였다. 중요 내용으로 그림의 기원과 정의 및 역사, 그림의 6가지 법칙에 따른 미술비평, 산수화의 형성과 전개, 스승과 제자의 양식적 전승 관계, 최고의 화가로 알려진 고개지 · 육탐미 · 장승요 · 오도자의 용필론, 그림의 양식론과 품평에 관한 이론, 감식과 수장, 감상 등 회화 일반 이론을 포괄하여 서술하였다. 또한 감식의 기본으로서 역대 그림에 쓰인 발문과 서명 등 관지에 대한 소개, 그림에 찍힌 궁전과 개인 도장에 관한 설명, 그림의 배접과 표구 방법, 장안 및 낙양과 기타 지역의 사찰과 도관에 있는 벽화 등 광범위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권4~10은 화가에 대해 시대순으로 기록하였다. 고대 황제시대부터 시작해서 장언원이 생존했던 당나라 말기인 회창(會昌) 원년(元年)[841]에 이르기까지 모두 372명의 중국 역대 화가들을 다루었다. 헌원시대 사황(史皇)을 시작으로, 왕소군의 전설로 유명한 모연수(毛延壽), 최고의 서예가로서 ‘서성(書聖)’으로 불린 왕희지(王羲之)와 아들 왕헌지(王獻之), 와유(臥遊) 개념을 제기한 종병(宗炳), 화육법(畵六法)을 제창한 사혁(謝赫), ‘화성(畵聖)’이라고 일컬어진 오도현, 북종화의 창시자 이사훈(李思訓), 남종화의 창시자 왕유(王維) 등 회화사에서 유명한 인물들이 수록되어 있다.
『역대명화기』는 화론서로서 풍부한 내용과 체계적인 서술로 후대 저작의 모범이 되었다. 북송 대의 곽약허(郭若虛)[11세기 후반 활동]가 지은 『도화견문지(圖畫見聞志)』, 남송 대의 등춘(鄧椿)이 지은 『화계(畫繼)』는 『역대명화기』의 체제를 따르고 있으며, 『역대명화기』 이후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들 저술은 중국 회화의 시원부터 남종 대까지의 중국 회화사를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