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20년(숙종 46) 건립. 원래 동작구의 대방초등학교 교정에 있었으나, 1940년 구획정리로 인하여 묘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으로 이장되고, 비는 1967년 현 위치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안으로 옮겨졌다.
화강암제 귀부(龜趺) 위에 오석(烏石)으로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첨석(檐石 : 처맛돌)을 얹었다. 귀부는 비신에 비해 크고 둔중하며, 첨석은 기왓골이나 처마와 공포의 조각이 섬세하고 상부에는 서로 틀고있는 쌍룡을 새겼다.
연령군은 숙종의 여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명빈박씨이다. 5세에 연령군에 봉해졌고 9세에 김동필(金東弼)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며, 종부시 · 도총부 · 사옹원의 별직을 지냈다. 21세 때 병사하였다. 자는 문숙(文叔),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숙종의 어명으로 건립된 이 비에는 연령군의 생애와 효성, 자애스러운 품행에 대해 적혀 있다. 비문은 좌의정 이이명(李頤命)이 지었고, 글씨는 예조판서 조태구(趙泰耉)가 썼으며, 비의 상단부에 제액이 있는데 전면에는 '王子延齡君贈諡(왕자연령군증시)'가 가로로 한자씩, 뒷면에는 '孝憲公神道碑銘(효헌공신도비명)'이 가로로 한자씩 전서로 음각되어 있다. 이 전액은 우참찬 민진원(閔鎭遠)이 썼다. 비문의 글씨는 조태구(趙泰耉)가 단정한 해서로 썼는데 토착화된 송설체(松雪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