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개성시 북안동 남대문루에 있는 고려시대의 범종.
내용
연복사는 고려의 수도 개성에 있던 절 가운데서도 이름난 큰절로서, 옛날에는 개성 남대문 문루 위에서 서남쪽으로 연복사 경내에 서 있는 5층탑이 바라보였다고 한다. 이 연복사가 1563년(명종 18)에 화재로 타 없어지자 종을 남대문으로 옮겼으며, 그 뒤 1900년대 초까지 개성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하여 울렸다.
연복사 종은 고려에서 주성하였으나 공장(工匠)은 원나라사람으로 고려종과는 형식이 다르다. 동합금으로 주조한 종의 무게는 약 14t에 달한다.
용두(龍頭)에는 쌍룡(雙龍)이 서로 등을 대고 얽혀 종뉴(鐘鈕)를 만들었으며, 종의 중앙 상부에는 사방으로 삼존불(三尊佛)을 부조하고 그 중간 네 곳에 장방형으로 종횡의 곽(郭) 안에 ‘法輪常轉(법륜상전)’, ‘國王千秋(국왕천추)’, ‘佛日增輝(불일증휘)’, ‘皇帝萬歲(황제만세)’라는 4구를 새겼는데, 이 글씨는 저수량(褚遂良)의 서체이다. 그리고 상하 요대(腰帶) 사이에는 범자(梵字)와 티베트 문자를 주출(鑄出)하였고 그 아래 곽내에 종명을 주각하였다.
종구(鐘口)는 8통(八筒)의 파상으로 둘레에는 파상문이 있으며 그 사이에 8괘(八卦)를 주출하여 진귀한 의장을 보이고 있다. 종을 주조하게 된 인연은 원(元) 지정(至正) 6년(1346) 봄 강금강(姜金剛)과 신예(辛裔)의 정부양사(正副兩使)가 명을 받들어 금폐(金幣)로써 종을 금강산에서 주성하였다.
명문은 당대의 명신 이곡(李穀)이 지었으며, 성사달(成師達)이 썼다. 글씨는 자경 2㎝ 정도의 해서이다. 명문 말미의 병술(丙戌)이라는 간지는 고려 충목왕 2년(1346)으로 종의 주조연대를 밝혀주고 있다.
연복사종은 형태가 우아하고 조각들이 섬세할 뿐 아니라 소리 또한 아름답고 맑아 그 여운이 100리 밖까지 퍼졌다고 하며, 종의 명문은 고려시대 금석문 자료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7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上)
- 『송도(松都)의 고적(古蹟)』(고유섭, 열화당,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