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동쪽으로 배천, 서쪽과 북쪽으로 평산, 남쪽으로 황해와 접하고 있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본래 고구려시대에 동음홀(冬音忽), 또는 동삼홀(冬三忽)·시염성(豉鹽城)이라 하였는데, 신라 경덕왕 때해고군(海皐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는 염주(鹽州)라 하였으며, 995년(성종 14)해주에 귀속시켰다. 그 뒤 영응현(永膺縣)·복주(復州)·석주(碩州)·온주목(溫州牧)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310년(충선왕 2) 행정구역개편에 의하여 목(牧)에서 부(府)로 강등되었고, 명칭도 연안으로 바뀌었다.
1413년(태종 13)연안도호부가 되었고, 경기도에서 황해도로 이속되었다. 1895년(고종 32)연안군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배천군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해서 지방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로 주위가 10여리나 되는 큰 저수지인 남대지(南大池, 일명 臥龍池)가 있었다. 또, 여기에서 동쪽으로는 60리까지 관개수로가 있었다.
당시에는 개성과 해주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한강과 예성강 하구를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리하여 심동역(深洞驛)·심동원(深洞院)·독산원(禿山院)·각산원(角山院)·신원(新院)을 비롯하여 해안에는 신포(新浦)·나진포(那津浦)·소초포(所草浦) 등의 포구가 있었다.
군 시설로는 정산(定山)·백석산(白石山)·주지곶(走之串)·간월산(看月山)·각산(角山) 등의 봉수가 해안지대에 설치되어 개성을 통해 서울로 연결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수비를 하였던 봉세산성(鳳勢山城)이 있으며, 토산물로 곤쟁이·쌀새우·홍어·숭어·붕어·굴·대합·소금·게 등이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