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이후 화학과 전자, 전기, 통신등 주요 산업분야를 개척함으로써 우리나라 산업화의 물결을 주도해 온 럭키금성(LG)은 고도산업 사회의 꿈을 실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69년에 연암문화재단을 세웠다. 아울러 1973년에 학교법인 연암학원을 설립하고, 1984년 3월에 구자경이 운영하는 학교법인 연암학원(蓮庵學園)에서 첨단 기술 사회의 주역이 될 공업인력 개발의 필요성이 절실해짐에 따라 연암공업전문대학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초대학장에 김호길(金浩吉)이 취임하였으며, 전자과와 전자계산과를 설치하였다.
1986년 2월에 제1회졸업생 125명을 배출하였으며, 1997년에는 전국 전문대학 최초 진주창업보육센터 중소기업청 설립인가를 받았다. 1998년 3월에는 연암공업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1999년 3월에는 연암공업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교육부 설립인가를 받았다. 2006년 7월에는 일본공업대학 교류협정 체결하였다. 2016년 연암공업대학에서 연암공과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14년 현재 3개 계열(전기전자정보계열·컴퓨터응용기계계열·산업정보디자인계열), 2개 학과(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기계공학과), 1개 학부(스마트융합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소수정예교육의 실현을 위하여 한 학급당 이론수업은 40명, 실험실습은 25명 내외로 모든 학생이 1인 1대로 강의 및 실험실습에 임할수 있도록 충분한 실습기자재를 확보함과 동시에 항시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24시간 개방 하고 있으며, 교수 1인당 학생 30명 내외의 전국 전문대학 최고의 전임교수 확보율을 자랑 하고 있다.
‘근면·성실하고 유능한 중견기술인을 양성한다’는데 교육목표를 두고 ‘덕육·지육·기육’의 삼위일체를 교육방침으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근면·실기체득·협화창진’으로 되어 있다.
부속기관으로는 학술정보전산원·학생복지센터·신문방송사·산학협동연구소·평생교육원·창업보육센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