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향파시대의 문학을 담당한 프로문학 집단의 하나로 1922년 9월 이적효(李赤曉)·이호(李浩)·김홍파(金紅波)·김두수(金斗洙)·최승일(崔承一)·심대섭(沈大燮)·김영팔(金永八)·박용대(朴容大)·송영(宋影) 등이 조직하였다.
이 문학 단체의 지향은 그 행동 강령 일부에 ‘본사(本社)는 해방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실제 활동으로 기관지에 해당되는 잡지 『염군(焰群)』을 발간하고자 2집까지의 원고를 모아 편집까지 한 바 있다.
1호의 내용은 이적효의 시 「지새는 새벽에 어린애 죽었어요」, 김홍파의 소설 「광도(狂盜)」, 이호의 시 「가로를 넘어서」, 박세영(朴世永)의 시 「양자강반에서」로 되어 있고, 2호의 내용은 송영의 희곡 「백양화(白洋靴)」, 김홍파의 소설 「어둔 마을」 등으로 되어 있다.
이들 글은 일제의 검열에 걸려 압수되어 끝내 활자화되지 못하였다. 염군사는 정신적으로 강경파에 속해 있었으며 문예 활동을 철저하게 계급투쟁의 방편으로 생각해서 같은 무렵에 발족을 본 프로문학단체인 파스큘라(PASKYULA)와 대조가 되었다.
파스큘라의 주동 세력은 김기진(金基鎭)이었는데, 그는 프로문학운동을 표방하면서도 끝내 좌파의 실제 활동에는 관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염군사의 이적효나 이호는 공산당의 지하조직에 가담하여 공작화사건에 연루되었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폐인이 되거나 옥사를 하였다. 또한, 염군사의 구성원 가운데 일부는 연극운동에 관계하여 극문회(劇文會)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의 질은 파스큘라에 비하여 떨어지는 편이다. 뒤에 염군사는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를 결성, 발족시키면서 발전적으로 해체,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