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영가지』는 권기(權紀)가 1602년(선조 35)에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지시에 따라 편찬에 착수, 8권 4책으로 초고를 완성하였다.
초고 상태의 영가지는 유성룡이 죽자 중단되었다가 함주지(咸州誌, 咸安邑誌)를 편찬한 바 있는 정구(鄭逑)가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권기 · 김득연(金得硏) · 권오(權晤) · 이혁(李爀) · 배득인(裵得仁) · 이적(李適) · 유우잠(柳友潛) · 이의준(李義遵) · 권극명(權克明) · 김근(金近) · 손완(孫浣) 등 10명을 부청(府廳)에 소집하여 재편찬을 시작, 1608년에 완성되었다.
완성본은 부사(府司)에 소장되어 오다가 1760년(영조 36)서울 찬수청(纂修聽) 관문(關文)으로 인해 해당 관청에 상송되었다. 1762년에 서울에 올려진 것을 등초(謄草)하여 다시 부사에 비치하고 1784년(정조 8) 호장 권창실(權昌實)에 의해 개장(改粧)되었다.
18세기 말부터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제1차 사본이 완성되었는데 8권 1책으로 정고본에 비해 시문이 많이 기재되고 권7∼8의 총묘조(塚墓條)에 묘갈명(墓碣銘)이 많고 총담(叢談)이 기재되어 있다. 제2차 사본은 8권 3책으로 지도가 없고 1차 사본에 비해 시문이 약간 삭제되어 있으며, 뒤에 8권 4책의 정고본이 목판본과 동일한 체재로 정리되었으며 총담은 실려 있지 않다.
『영가지』는 전국 읍지 가운데 매우 빠른 시기인 17세기 초에 완성되었고, 특히 유성룡과 정구의 지휘하에 권기를 비롯한 안동의 명사들이 참여하여 체제가 정연하고 내용이 충실하여 지방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판목은 1839년에 완성되었으며, 총 99매 188장(張)으로 서(序) 3장, 목록 3장, 지도 6장, 본문 173, 발문(跋文) 3장이다. 제작기술이 정교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권오기가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