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에 일본의 무력을 동반한 강압에 못 이겨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을 계기로 국권상실의 위기를 감지하게 된 당시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은 구국을 위한 교육운동을 맹렬히 전개하였다.
이 같은 교육구국운동의 전개에 따라 1906년부터 1911년 말까지 사이에 전국에 걸쳐 수천여 개의 사립학교가 설치되었다. 이들 사립학교 중에는 농업·공업·상업 등의 실업기술교육을 실시한 교육기관도 상당수에 이르는 바 특히 공업분야의 기술교육을 실시한 교육기관 중에는 측량술을 가르친 교육기관이 비교적 많았다.
영돈측량학교도 측량술을 가르친 실업교육기관의 하나로 1908년 11월에 한성에 설치된 교육기관이다. 안동권씨(安東權氏) 종중에서는 1908년 9월에 당시에 특히 측량학의 습득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문중(門中)의 자제들에게 측량술을 가르치기 위한 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권황현(權皇縣)과 권황낙(權皇樂)이 한성의 광화문에 영돈측량학교를 1908년 11월에 개설하고, 안동권씨 문중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측량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