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1책. 필사본. 편찬 경위는 자세하지 않다.
사도세자의 횡포와 실덕(實德)을 간쟁한 대신들의 상서·복계(伏啓)·일기·수차(袖箚)·인견(引見)·전지(傳旨)·유서(喩書)·차자(箚子)·전교(傳敎)·사건(事件)·제문 등이 날짜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필선박성원상서 弼善朴聖源上書>를 비롯해 부제학 김시찬(金時粲)과 지사(知事) 박치원(朴致遠), 지평(持平) 강필리(姜必履) 등의 상서는 사도세자가 부왕에게 효성을 다하고 궁액(宮掖)을 애호하며 학업을 닦아 군왕의 자질에 손색이 없는 행동과 위엄을 갖추어줄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광현일기 李光鉉日記>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처벌하기 위해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한 때부터 사도세자를 불러들여 뒤주 속에 감금해 죽게 한 사실이 목격한 대로 기록되어 있는데, 일반 정사보다 상세하다.
<천원시사 遷園時事>는 정조가 등극한 뒤 아버지가 비명에 죽었다는 사실을 슬퍼하고 당시 허술하게 거행된 장례절차와 묘지가 좋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묘를 현륭원(顯隆園)으로 옮기기까지의 의궤(儀軌)·절차 및 논의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추탈김상로관작전지 追奪金尙魯官爵傳旨>는 정조가 등극한 뒤 세자의 파멸을 음모한 괴수격의 김상로에 대해 부자상잔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 책임을 물어 관작과 영예를 죽은 뒤에도 삭탈하고 비명횡사한 아버지에 대해 복수하는 내용의 전지이다.
<조덕린사 趙德麟事>는 서원의 남설(濫設)을 방지하자는 소를 올렸다가 반대당에게 몰려 귀양가게 된 조덕린의 사건을 계기로 벽서 사건 등 당파의 음모가 계속해서 일어나자, 이의 처리 전말을 밝힌 것이다.
이 밖에도 영조 재위 기간에 충성을 다해서 보필한 박문수(朴文秀)·이종성(李宗城)·홍봉한(洪鳳漢) 등에 대해 사제문(賜祭文)과 치제문(致祭文)을 내려 국가를 위해 이바지한 공로를 치하하였다. 그리고 비록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영원히 왕실을 지켜줄 것을 당부한 글 등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