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이찬(伊飡)에 이르렀다. 736년(성덕왕 35)에 이찬 윤충(允忠)·사인(思仁)과 함께 평양(平壤 : 北漢山郡)·우두(牛頭 : 지금의 춘천)를 검사하고 살피었다.
성덕왕대부터 적극적으로 시도되기 시작한 북방진출·변경개척사업은 발해의 남하정책에 대응, 당시 몰락해가던 농민층의 보호를 위한 사회경제적 시책의 일환이었다. 영술이 평양·우두를 검사하고 시찰한 것도 이러한 시책을 위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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