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려의 흥화진(興化鎭)이었는데, 1030년(현종 21) 주(州)로 승격하여 방어사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주를 폐하고 의주에 내속시켰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에 있어 국방상의 요지였다. 백마산성(白馬山城)에서 뻗은 산줄기가 남북으로 이 지역을 감싸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 비옥한 평야가 있어 농작물의 생산이 많았다.
양둔(楊屯)ㆍ해둔(海屯)에는 창고가 있었고, 운량포(運糧浦)ㆍ진병곶(鎭兵串) 등은 군사물자를 조달하던 곳이었으며, 언리암(焉里巖) 봉수는 서해안을 연결하였다. 당시의 영주는 인주(麟州)ㆍ정주(靜州)와 함께 백마산성의 외곽적인 군사기지로 국경을 방어하는 군사기지의 성격을 가진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