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旦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자춘(子春)으로 고쳐 내성군(奈城郡: 지금의 寧越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때 영춘으로 고쳐서 원주(原州)에 속하게 하였다.
1399년(정종 1) 영춘과 영월이 견아상입지형(犬牙相入地形)이라 하여 그 소속을 맞바꾸어 영춘을 충청도로 이속시켜 감무를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군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단양군에 병합되어 영춘면이 되었다.
소백산맥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군사ㆍ교통상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관적령(串赤嶺)ㆍ마아령(馬兒嶺)ㆍ여촌령(呂村嶺) 등을 통해 경상도 지역과 연결되었다.
신라 문무왕 때 말갈족이 잠입하여 아달성(阿達城)을 빼앗으려 하므로 성주인 소나(素那)가 이들과 분전하다가 전사한 기록이 있다. 고려의 우왕 때도 왜구가 침입하였다고 한다.
유적으로는 고구려 장수 온달(溫達)이 쌓았다는 온달성이 있는데, 성의 둘레는 1,523자, 높이는 11자가 되며 성 안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남굴(南窟)로 보이는 동굴에 대한 기록이 『대동지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