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증대이(甑大伊)였는데, 1001년(목종 4) 이곳에 성을 쌓아 진(鎭)을 설치하여 동계(東界)에 예속시켰다가 뒤에 현을 설치하였다. 조선 초기에 안변군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뒤에 직촌화하였다.
영풍은 고려 초기에 국경지대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였던 곳으로 조선 말기까지 성터가 남아 있었다. 이 지역은 곡산(谷山)ㆍ이천(伊川) 등지에서 안변ㆍ문산(文山)에 이르는 교통로가 발달했었고, 조선시대에는 창(倉)이 있었다.
영풍은 ‘큰 골짜기〔大谷〕’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는 이 지역의 지형이 임진강(臨津江) 상류의 계곡 분지를 이루는 것을 나타낸다. 낭림산맥 끝부분의 북쪽을 차지하는 북측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