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종류의 진언을 범자(梵字)로 적고 한자의 음역을 대조하여 놓은 책이다. 내용은 사십이수진언(四十二手眞言)·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수구즉득다라니(隨求卽得陀羅尼)·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 등이다.
이 한문본은 조선 초기에 간행되었는데, 여기에 한글의 음역을 추가로 대조하여 간행한 『오대진언』이 따로 있다. 그 책에 있는 학조(學祖)의 발문에 의하면, 인수대비(仁粹大妃)의 명에 따라 일반민중이 진언을 쉽게 익혀 암송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책이 간행되었다고 한다.
간기가 없으나 발문의 연대인 1485년(성종 16)의 간행으로 생각된다. 이 간본에는 『영험약초(靈驗略抄)』가 뒤에 붙여져 있는데, 한문 원전만인 것도 있으나 언해까지 붙여진 책이 있으므로 처음부터 언해하여 첨부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대진언』이라고 하면 이 책을 가리킬 정도로 널리 유포되었다.
원간본 이외에 간기가 분명한 중간본만도 1531년(중종 26)의 지리산 철굴(鐵堀), 1534년의 묘향산 도솔암(兜率庵), 1535년의 황해도 심원사(深源寺), 1550년(명종 5)의 풍기 철암(哲庵), 1635년(인조 13)의 은진 쌍계사(雙溪寺) 등에서 간행된 책이 전한다.
그런데 『오대진언』의 진언은 한글의 음역만으로 간행된 일이 있다. 1476년의 간기를 가지는 「사십이수진언」과 간기는 없으나 같은 무렵의 간행으로 보이는 「수구즉득다라니」와 「불정존승다라니」가 수록된 책이 그것이다. 이를 1569년(선조 2) 은진 쌍계사에서 복각하여 중간한 「수구즉득다라니」와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수록된 책도 전한다.
이들 책에 나타나는 진언의 한글 음역은 1485년의 『오대진언』과 일치하나, 진언의 명칭과 계청문(啓請文)의 한자에 현실화된 독음을 한글로 표기한 것이 특이하다. 「수구즉득다라니」 뒤의 「수구영험(隨求靈驗)」은 『영험약초』의 그것과 번역이 다르고, 한자음의 한글표기도 현실화되어 있다. 한자음의 표기에서 『동국정운』을 따르지 않은 최초의 문헌이라 할 것이다.
요컨대, 이들 책은 국어사연구를 비롯하여 불교사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진언을 암송할 때의 손 모습을 그린 수인도(手印圖)는 매우 정교하게 판각되어 있어서 삽화의 연구에도 귀중한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