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재록 ()

목차
관련 정보
오룡재록
오룡재록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남명학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99년에 간행한 시문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남명학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99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4권 1책. 목판본. 1799년(정조 23)에 아들 양룡(陽龍)이 편찬, 간행하였다. 이병모(李秉模)·황승원(黃昇源)의 서문이 있다.

이 책은 권1·2는 <몽은록 蒙恩錄>, 권3은 <여우록 廬憂錄>, 권4는 <군친몽교록 君親夢敎錄> 및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몽은록>은 제목 그대로 왕이 베푼 은혜에 대한 기록이다. 권1은 저자가 1768년(영조 44) 38세에 현릉참봉(顯陵參奉)이 된 과정과 왕의 특별한 배려에 그지없이 감격해 하는 심경을 서술한 글인데, <감군사 感君詞>라는 시를 따로 지었다.

영조가 태학생(太學生)이던 남명학에게 특별히 관직을 준 것은 76세의 아버지에 대한 갸륵한 효심이 동기가 되었지만, 보다 더 큰 이유는 그가 가장 변방인 함경도 종성출신이라는 점이었다.

권2에서는 정조와의 만남과 자신이 여러 관직에 임명된 상황을 서술하였다. <여우록>은 아버지의 삼년상을 지낸 기록인데, 부록3의 <오룡재남선생충효추모비기 五龍齋南先生忠孝追慕碑記>에 의하면, 그는 삼년상을 지내는 동안 채소와 염장(鹽醬)을 먹지 않고 죽으로만 연명하여 사람들이 그 효성을 칭찬하였다 한다. <군친몽교록>은 죽은 뒤 영조와 그의 아버지를 꿈에서 만난 것을 서술한 글이다.

부록 1의 <서오룡록후 書五龍錄後>는 윤행임(尹行恁)이, 부록 2의 <공조좌랑남공묘표 工曹佐郎南公墓表>는 남공철(南公轍)이, 부록 3의 <오룡재남선생충효추모비기>는 박찰원(朴察遠)이 썼다. 남명학의 저술은 이밖에 ≪오룡재유고≫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오룡재유고(五龍齋遺稿)』
관련 미디어 (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