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낙동강유역에서 출토되는 삼국시대의 오리모양의 토기.
개설
내용
이들 토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현풍 출토로 전해지는 오리토기 한 쌍이다. 이 토기는 암수 한 쌍으로 보이는데, 장방형 굽구멍이 4개 뚫려 있는 나팔형 굽다리 위에 오리 1마리씩을 올려놓았다.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꼬리를 치켜올린 것같은 형태에 납작한 부리와 눈, 등쪽에 따로 만들어 붙인 날개 등에서 사실적인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속이 빈 몸통의 등 위에는 양날개 사이에 원통형의 주입구를 만들었으며 원통형 주입구의 가장자리는 톱날모양으로 잘라냈다. 부리 쪽에도 이와 같이 칼질해서 톱날처럼 만들었다.
다른 오리토기들도 대부분 비슷한 형태이나 현풍의 것과 같이 부피가 크고 사실적인 것 외에도 삼각형 몸통에 가는 목과 작은 머리, 작은 부리를 가진 형태도 있다. 굽다리접시의 몸통을 오므려서 만든 특이한 형태도 있다.
후자의 토기는 일본의 동경대학(東京大學) 소장품으로 대구에서 구입한 것이다. 2단의 굽구멍을 가진 굽다리접시의 몸통을 가운데로 오므려 그 위에 다리처럼 진흙띠를 걸쳐서 손잡이처럼 한 다음, 긴 쪽의 한 끝에 조그만 새머리를 붙여 오리모양의 토기로 만든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오리토기의 변화된 형태로 생각된다.
오리토기는 원삼국시대인 3세기 후반에 낙동강유역에서 와질토기로 만들어지고 있다. 단지 머리부분의 벼슬에서 오리보다는 닭을 묘사한 것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벼슬을 제외한 속이 빈 몸통과 원통형 주입구, 굽다리 등에서 삼국시대 오리토기와 공통성을 보여주고, 지역적으로도 같기 때문에 이들 두 시기의 토기들은 서로 관련성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오리는 3세기경에 이르러 낙동강 동안 지역에서 토기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오리모양토기의 제작은 낙동강유역의 새 숭배사상과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민간신앙이 무덤에 오리모양토기를 부장하게 된 주요인인 듯하다.
오리모양토기는 대체로 삼국시대에 유행했으며 주로 무덤에서 출토되어 껴묻거리(副葬品)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출토지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여 신라지역과 가야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대부분 암수 한쌍으로 출토되고 있다.
토우(土偶)는 가야(伽倻)·신라(新羅)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가야는 계속 발전하지 못하였고 신라에서는 후대(後代)까지 각종의 토우가 제작 발전하였다. 압형토기(鴨形土器)도 토우의 한 형식으로 파악되어 지는데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압형(鴨形)의 의장(意匠)에 중점을 둔 신조(神鳥)로서의 장송의례적(葬送儀禮的)인 공헌토기(供獻土器)이다.
이는 『삼국지』위서 변진전(弁辰傳)의 “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이대조우송사 기의욕사사자비양”이라는 사료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곧, 묻힌 자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해 가는 교통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따라서 이러한 토기의 제작과 부장(副葬)은 그 시대의 사상(思想) 및 내세관(來世觀)을 고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물오리나 새는 악령을 방지하고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한다는 믿음이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있어 왔다. 또한 홍수나 재해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의 새로 상징되기도 하고 과거급제를 나타내기도 한다.
참고문헌
- 『삼국시대의 동물원』(부산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 편,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복천분관, 1997)
- 「압형토기고(鴨形土器考)」(이현주, 『박물관연구논문집』4, 부산광역시립박물관, 1995)
- 「신라(新羅)의 기용(器用)에 관(關)한 연구(硏究)」(이은창, 『삼국사기(三國史記) 지(志)의 신연구(新硏究)』, 신라문화선양회(新羅文化宣揚會), 1981)
- 『한국(韓國)의 미(美)5-토기(土器)-』(한병삼, 중앙일보사, 1981)
- 『신라토기(新羅土器)』(김원룡, 열화당, 1981)
- 「신라가야동물형토기소고(新羅伽耶動物形土器小考)」(김원룡, 『한국학보』13,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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