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 호성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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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문신 이충원을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이충원 호성공신교서 미디어 정보

이충원 호성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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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04년 문신 이충원을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축. 필사본. 이 문서는 명주에 두꺼운 선지(宣紙)를 배접해 만든 세로 36㎝, 가로 230㎝의 두루마리이며, 앞뒤 공백인 부분까지의 길이는 총 298.8㎝이다. 주사란(朱絲欄)으로 긋고 총 60줄에 걸쳐 해서체로 묵서(墨書)하였다.

말미 연월일 뒤에 ‘施命之寶(시명지보)’라는 어보가 찍혀 있다. 뒷면 왼쪽 하단에 양질 저지를 붙이고 ‘이정혐 제(李廷馦製), 한호 서(韓濩書)’라고 두 줄로 공신교서의 제진자(製進者)와 필사자를 밝히고 있다.

이 공신교서는 ‘교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이충원 서(敎忠勤貞亮效節協策扈聖功臣……李忠元書)’라 제(題)하여, 이충원의 공적 사례, 공신에 대한 포상과 특전, 공신의 명단, 사실 증명 등을 차례로 적고 있다. 이충원은 2등 12번째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평정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려진 훈호는 호성(扈聖)·선무(宣武) 두가지로 나누고 있다. 당시 훈호를 의정할 때 서울에서 의주까지 시종 왕을 호종한 사람을 호성공신으로, 왜병을 정벌한 장수들과 원병과 양곡 요청을 위해 명나라에 내왕한 사신을 선무공신으로 책봉하고, 또 각 3등으로 나누어 상사(賞賜) 등을 달리하였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 1392년(태조 1)의 개국공신을 비롯해 공신의 마지막인 1728년(영조 4)의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이르기까지 약 340년에 28개의 공신이 책록되었다. 그 중에 호성·선무 두 공신은 왜적을 물리치고 국토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다른 공신과는 달리 특히 중요시되고 있다.

이 공신교서는 임진왜란사 연구의 사료이며, 이충원의 전기적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 전기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한호의 글씨라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도 높이 평가된다.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백자리에 거주하는 이석주(李奭周)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이용선이 2005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하였다.

참고문헌

  • - 『완양부원군이충원호성공신교서조사보고서』(이정섭, 문화재관리국,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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