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려 때 합포현(合浦縣) 관할의 완포향(莞浦鄕)이었는데, 1281년(충렬왕 7) 원나라와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공로가 있다 하여 현으로 승격되어 금주(金州)의 관할로 하였다가, 문종 때 웅천현(熊川縣)의 속현으로 하였다. 1908년 창원부(昌原府)에 속하였으나 1914년 마산부(馬山府)가 설치될 때 마산에 편입되었다.
완포는 조선시대에 수군의 중요한 기지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선군(船軍) 840명, 영진군(營鎭軍) 120명, 군정(軍丁)ㆍ시위군(侍衛軍) 47명이 있어 이곳의 주민 1,079명과 거의 같은 숫자가 되었다.
『대동여지도』에서 완포는 유성(有城)으로 표기되었고, 서쪽 해안의 풍덕포(豊德浦)도 옛 진지〔古鎭堡〕로 나타내었다. 완포의 진산인 고산(高山)에는 남쪽의 사화랑(沙火良)과 북쪽의 성황(城隍)을 연결하는 봉수가 있었다.
지형상으로는 동쪽의 장복산(張福山)에서 갈라져 나온 2개의 산줄기가 남북을 가로막고 있어 해안의 작은 분지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교통상으로는 웅천과 창원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였으나 거리상으로는 창원이 가깝고, 손도진(孫渡津)을 통하여 합포(合浦)와도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