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왕씨종족기(王氏宗族記)』, 줄여서 『종족기(宗族記)』라고 하였다. 현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편찬연대·권수·체재·내용 등이 모두 미상이다.
다만 『익재난고(益齋亂藁)』, 『역옹패설(櫟翁稗說)』 전집(前集) 1과 『고려사(高麗史)』의 고려세계(高麗世系), 『동사강목(東史綱目)』 등에 이 책의 내용의 일부분이 인용되어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은 모두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선대에 관한 것으로, “국조(國祖 : 태조의 증조부로 元德大王으로 추증됨)의 성은 왕씨(王氏)이다.”라는 기록과 “국조는 태조의 증조이고 정명왕후(貞明王后)는 국조의 비이다. ”라는 기록인데, 모두 『고려사』의 고려세계에 인용된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의 기술내용과 다르다.
이 점에 대하여 이제현(李齊賢)은 그의 『역옹패설』에서, 『왕대종족기』의 기록이 옳고 『편년통록』의 내용이 잘못이라고 논한 바 있다. 이로써 볼 때, 고려 태조의 선대에 관한 기록이 『왕대종족기』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이며, 그 기록도 김관의의 『편년통록』보다 합리적이고 정확한 것이었다고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