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마을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개설
광량만에 닿은 벌판의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해발 100m 미만의 구릉 가운데에는 궁산마을에 접한 2개의 언덕이 있다. 이 중 남쪽의 해발 20m의 것을 소궁산이라고 한다. 유적은 이 소궁산의 동남쪽으로 향한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
내용
제3호 집자리는 제1호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거리에 있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지표에서 120∼130㎝ 깊이의 풍화된 암반층에 있었고 화덕자리가 있었다. 제4호 집자리는 밑테두리 지름 5.2∼5.5m, 윗테두리 지름 약 6.2m로 불규칙하였다. 깊이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점점 얕아져서 남쪽 끝은 55㎝였으나 남쪽 일부가 파괴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었다.
바닥은 5㎝ 두께로 진흙으로 다졌고, 중앙부분에 지름 약 80㎝, 길이 약 20㎝ 규모의 화덕이 있었고 안은 재로 가득 차 있었다. 화덕 옆에는 토기가 거꾸로 놓여 있고 밑부분은 없어져 있었다. 이 토기 안에는 조개껍데기와 생선뼈 등이 담겨 있었고 판돌로 덮여 있었다.
제2호 집자리는 제4호 집자리가 폐기되고 난 뒤에 퇴적된 조개껍데기를 들어내고 마련된 것이다. 깊이는 약 70㎝에 이르나 파괴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남북 85㎝, 동서 75㎝ 규모의 화덕이 있었고 그 둘레는 진흙으로 테두리를 만들었다.
제5호 집자리는 제2호 집자리의 동남쪽 약 200m 거리에 있었다. 긴축〔長軸〕을 동북-서남선상에 두고 있는 부정형 원형이다. 중앙부의 길이 5.2m, 동북쪽 너비 2.9m, 서남쪽 너비 4m이다. 동남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는 화덕은 남북 약 50㎝, 동서 약 70㎝, 중앙부 길이 약 35㎝이다.
출토유물로는 빗살무늬토기편 · 민무늬토기편 · 돌살촉〔石鏃〕 · 돌창편(석창편(石槍片)) · 그물추〔漁網錘〕 · 갈돌 · 돌괭이(석서(石鋤)) · 돌도끼〔石斧〕 · 돌대패 · 돌끌〔石鑿〕 · 숫돌〔砥石〕 · 뼈송곳〔骨錐〕 · 뼈바늘〔骨針〕 등 다수가 있다. 이 유적은 유구 및 출토유물을 통해볼 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기를 달리하는 주거지유적임이 분명하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우리나라 원시집자리에 관한 연구』(북한 사회과학출판사 편, 1975)
- 『궁산원시유적발굴보고』(북한 과학원출판사 편, 1957)
- 『브리태니커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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