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에 이곳은 황막한 초원으로 우마의 방목지였으나, 들 가운데에서 하얀 증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온천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시 폐쇄되었다가 용강온천선이 개통되면서부터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다.
온천은 동쪽에 청산칠봉(靑山七峰)이라고 부르는 100m 내외의 독립봉이 연해 있고, 서쪽으로 해안 가까이에 있어 황해를 전망할 수 있어서 온천취락으로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동쪽으로 3㎞ 가량의 거리인 용정리에는 1,500년쯤 전에 세워진 점제현비(黏蟬縣碑)가 있어서 고고학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약한 염류천을 이루며, 수온은 탕원에서는 70℃ 이상이고, 욕조에서는 40℃ 내외로 낮추어 급수하고 있다. 1일 용출량은 27만ℓ 가량으로 우수한 온천이다. 평남선(平南線)과 용강온천선이 개통됨에 따라 광복 전에는 서울ㆍ평양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많은 휴양욕객이 모여 번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