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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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가사 「용담가」 · 「언삼가」 · 「교훈가」 등 9편을 수록한 가사집. 포교가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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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가사 「용담가」 · 「언삼가」 · 「교훈가」 등 9편을 수록한 가사집. 포교가사집.
내용

한글본. 1860년(철종 11)에서 1863년에 걸쳐 지었다. 수록 내용은 용담가(龍潭歌)·안심가(安心歌)·교훈가(敎訓歌)·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도수사(道修詞)·권학가(勸學歌)·도덕가(道德歌)·흥비가(興比歌)·검결(劍訣)의 9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운행록 水雲行錄≫에 의하면, 이 ≪용담유사≫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처사가 處士歌>를 포함하여 모두 10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담유사≫는 1881년 6월 충청북도 단양군 남면 천동여규덕(呂圭德)의 집에서 최시형(崔時亨)에 의하여 처음 간행되었고, 그 뒤 1893년과 1922년 각각 목판본으로 다시 간행된 바 있다. 이때 <검결>은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함께 간행되지 못하였다.

≪용담유사≫는 한문으로 된 ≪동경대전 東經大全≫과 더불어 동학의 기본경전이다. 최제우는 그가 깨친 후천개벽사상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국문으로 쓰고, 가사의 형식을 빌려 표현하였던 것이다. 각 편의 내용과 특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용담가 : 1860년 득도한 바로 그 해에 지은 가사이다. 전체가 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음보 1구로 모두 144구로 되어 있다. <용담가>는 조상 때부터 지켜내려왔고, 또 최제우 자신이 태어나서 자랐으며 득도하였던 경주 구미산 용담의 아름다움과 득도의 기쁨을 노래한 가사이다. 용담의 산의 형세와 물의 형세가 아름답고 절묘함을 노래하였으며, 신라 때 우리 문화를 찬미하면서 득도하게 된 내력과 그 기쁨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이 <용담가>에는 당시 일반 민중간의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풍수지리사상과 가계존중의 문벌충효의식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운율의 흐름과 변화 있는 언어의 구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2) 안심가 : 1860년에 발표한 가사이다. 2음보 1구로 총 290구로 되어있다. 이 <안심가>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불안해하던 부녀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지은 노래이다. 이 가사에서 최제우는 득도한 뒤 하늘에서 물형부(物形符 : 최제우가 영감을 받아 천신을 그린 천주교도의 영부)를 받아 이를 그린 종이를 먹고 신선과 같은 풍채와 골격을 갖추게 된 자신을 서학(西學)을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그 뒤, 왜적에 대한 적개심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곧 왜적을 쓸어버리고 우리나라의 운수를 보전할 몸임을 밝히고, 따라서 부녀자들은 안심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특히, 이 가사에서 최제우는 천대받던 이 나라의 부녀자들을 현숙하고 거룩하다고 떠받들면서, 춘삼월 호시절의 태평가를 함께 부를 주체로 설정하고 있다. 선각자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부분이다.

(3) 교훈가 : ≪수운행록≫·≪천도교창건사≫ 등에 의하면 1860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최제우가 득도한 이듬해인 1861년에 이루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2음보 1구로 총 448구로 된 장편가사이다. 자손들에게 내리는 교훈형식으로 된 이 가사는, 고향의 교도들에게 힘써 수도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곧,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그의 몸에 이미 모시고 있으므로, 하늘 조화의 그 참된 마음을 고이고이 삼가 지켜 이를 공경하고 믿는 데서 창조의 바른 기운을 되살려낼 것을 당부한 것이다.

(4) 몽중노소문답가 : ≪수운행록≫에 의하면 1861년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고, ≪천도교사 天道敎史≫에는 1862년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총 4장으로, 2음보 1구로 총 169구로 이루어져 있다. “삼각산 ᄒᆞᆫ양도읍 ᄉᆞᄇᆡᆨ년 지늰 후의 ᄒᆞ원갑 이 세상”에 자식이 없던 두 늙은이가 금강산에 들어가 산신께 빌어 옥동자를 얻었다. 이 아이는 ‘군불군(君不君)’·‘신불신(臣不臣)’·‘부불부(父不父)’·‘자부자(子不子)’의 난세를 한탄하고, 천하를 두루 다니다가 고향에 돌아와 백가시서(百家詩書)를 외웠다. 그러다가 다시 고향을 떠나 금강산 상상봉에 올라 쉬다가 꿈속에 한 도사를 만나 깨우침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이 가사는 최제우의 출생·성장·득도과정·득도내용 등을 요령 있게 잘 설명하고 있다. 득도의 내용은 다음 구절에 집약되어 있다. “십이졔국 괴딜운수 다시 ᄀᆡ벽 안일넌가 ᄐᆡ평성세 다시 졍ᄒᆡ 국ᄐᆡ민안 ᄒᆞᆯ거시니 ᄀᆡ탄지심 두지 말고 ᄎᆞᄎᆞᄎᆞᄎᆞ 지나셔라 ᄒᆞ원갑 지나거든 상원갑 호시졀의 만고업ᄂᆞᆫ 무극ᄃᆡ도 이셰상의 날거시니.”라는 도사의 깨우침이 그것이다.

(5) 도수사 : 1861년에 지은 가사로, 2음보 1구로 총 200구로 되어 있다. 득도한 뒤 고향에서 여러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제자들에게 수도하기를 간곡히 당부한 것이다. 즉, “셩경이ᄌᆞ 디켜ᄂᆡ야 ᄎᆞᄎᆞᄎᆞᄎᆞ 닥가ᄂᆡ면 무극ᄃᆡ도 안일넌가 시호시호 긋ᄃᆡ오면 도셩입덕 안일넌가.”라고 하면서, 제자들이 자신이 전한 연원도통(淵源道統)을 지키면서 성(誠)과 경(敬)으로 도를 닦기를 당부하고 있다.

(6) 권학가 : 남원읍 서쪽 10리 밖 교룡산성 안에 정하였던 은적암(隱寂庵)에서 임술년(1862) 새해를 맞이하면서, 각지 제자들에 대한 정회(情懷)를 가눌 길 없어 지은 가사이다. 2음보 1구로 총 228구로 되어 있다. 최제우 자신이 자각창도(自覺創道)한 동학을 믿음으로써 다 같이한울님의 참뜻으로 돌아가 한 몸 같이 될 것을 권유한 노래이다. “성지우성(誠之又誠) 공경해서 한울님만 공경하소.”, “성경이자(誠敬二字) 지켜내어 한울님을 공경하면 자아시(自兒時) 있던 신병(身病) 물약자효(勿藥自效) 아닐런가.”라고 노래한다. 이어서 어질고 뜻있는 사람 만나거든 시대의 운수와 변화를 의논하며, 백년의 신세(身勢)를 말하거든 이 가사를 주고 결의해서 기르침을 존중하도록 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7) 도덕가 : 1863년 7월 경주 현곡면 등지에서 순회설법하던 당시에 지은 가사로, 2음보 1구로 총 136구로 되어 있다. 지벌(地閥)과 문필(文筆)보다는 도덕의 귀중함을 깨우친 노래이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조화를 자각 실현함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내 몸에 이미 모시고 있는 하느님에 대하여 공경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이니, ≪대학≫·≪중용≫의 종지(宗旨)로서 천명된 성경이자(誠敬二字)가 그것이요, ≪주역 周易≫의 문언전(文言傳)에 언급된 바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기를 강조함이 그것임을 깨우쳐 주고 있다.

(8) 흥비가 : 1863년에 지은 가사로, 2음보 1구로 총 184구로 되어 있다. <흥비가>는 ≪시경≫의 노래체인 흥(興 : 먼저 다른 물건을 읊어서 그 목적한 것을 끄집어 일으키는 것)과 비(比 : 어떤 사물을 끌어대어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을 가리켜 하는 말)를 사용하여 도를 닦는 법을 가르친 노래이다. 도를 닦는 일은 결코 어렵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일상적인 일부터 요령 있게 행하는 데에서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흥비가>는 천도 파악의 인식론적 과정을 비유적으로 노래한 가사라고 할 수 있다.

(9) 검결 : 1861년에 지은 가사로, 2음보 1구로 총 24구의 짧은 노래이다. ‘칼노래’라는 뜻의 이 노래는 최제우가 정치적 변혁을 꾀하였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최제우는 전라북도 남원의 은적암에서 수도를 하면서 득도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 <검결>을 짓고 목검(木劍)으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 떨쳐 입고 이칼 저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비켜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에서 보듯이, 최제우는 수도에만 그치치 않고 상원갑 세계를 위한 변혁을 꾀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최제우는 처형당하였고, <검결>도 ≪용담유사≫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해지지 못하였다. 갑오동학농민전쟁 때는 동학군의 군가로 애창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동학가사(東學歌辭)』 Ⅰ(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
『한국가사문학론』(정재호, 집문당, 1982)
「용담유사의 내용분석」(김인환, 『문학과 문학사상』, 열화당, 1978)
『한국문학통사』 4(조동일, 지식산업사, 1986)
「용담유사의 근대적 성격」(정재호, 『근대문학의 형성과정』, 문학과 지성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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