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서결 ()

목차
관련 정보
원교서결
원교서결
서예
문헌
조선후기 양명학자 · 서예가 이광사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법(書法)에 관하여 저술한 이론서. 서첩.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양명학자 · 서예가 이광사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법(書法)에 관하여 저술한 이론서. 서첩.
내용

필사본. 이광사는 서결(書訣) 전편을 1764년(영조 40), 60세 되는 해에 지었으며, 서결 후편을 4년 후인 1768년에 지었다.

서결 전편은 모두 5,000∼6,000언(言)으로 왕희지(王羲之)와 위관(衛瓘)의 뜻을 밝혔으며, 후편에 이를 더욱 넓혔는데, 이는 아들 영익(令翊)이 대신하여 기술(記述)하고 나중에 수정한 것으로 모두 1만여언에 달한다.

그 내용을 보면 전편은 20쪽으로 위부인(衛夫人) 이래 당·송에 이르는 서결을 모은 것이며, 후편의 상 13쪽과 하 13쪽, 모두 26쪽은 저자자신의 경험과 전편에 빠졌던 고인(古人)의 서론(書論)을 곁들여 보충하였다.

이 책에 대하여 김정희(金正喜)는 「서원교필결후(書圓嶠筆訣後)」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가에게는 필법(筆法)과 묵법(墨法)이 있는데, 묵법에 관하여는 언급됨이 없고 또 현완(懸腕 : 팔을 바닥에 붙이지 않고 붓을 곧게 쥐고 쓰는 법)을 알지 못하며, 왕희지의 여러 서첩을 기준으로 논술하면서 왕희지의 어느 첩(帖)인지도 모르니 딱한 일이라 하였다.

한번 미오(迷誤)에 빠지면 의혹을 풀 수 없으며 선본(善本 : 내용의 계통이 오랜 희귀한 책)을 얻어 정도(正道)에 나아가야만 그 천품(天品)을 제대로 완주할 수 있다고 평하였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관련 미디어 (6)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