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7m. 용암사는 해발 804m의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었던 절로, 약 400평 정도의 절터에는 현재 많은 주춧돌과 함께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특히 ‘용암사(龍嵒寺)’라는 글자가 있는 기와가 발견되었기에, 이곳이『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용암사임을 알 수 있다. 석탑은 절터의 중심 지역에서 남동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고, 중심 지역에서 약 50m 떨어진 입구에는 ‘죽암당(竹岩堂)’이라고 새겨진 석종형 부도를 비롯하여 또 다른 부도 1기가 있으며, 북서쪽에는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972년 지정)이 자리잡고 있다.
석탑은 거대한 암반을 바닥돌로 삼아 서 있는데, 단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형 석탑의 모습이다. 암반 위에 평평하게 탑구(塔區)를 조성하였고, 그 위에 8장의 돌을 놓아 2단의 높직한 굄대를 구성하고서 받침돌의 면석을 받게 하였다. 받침돌의 면석 역시 8장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면석의 좌우에는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 부분에는 1개의 가운데 기둥이 가지런히 조각되어 있다. 4장의 돌로 조립된 받침돌의 덮개돌은 널찍한 편으로,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마련되어 있고, 다른 돌로 만든 윗면의 높직한 2단 굄대는 육중한 탑신부(塔身部)와 잘 어울린다.
1층 몸돌은 윗부분에 아래부분보다 작은 돌 하나를 더 올린 모습이지만, 2~3층의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좌우에 모서리 기둥이 가지런히 조각되었다. 지붕돌은 1층과 2층은 2장의 돌로 이루어졌고, 3층은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지붕돌의 받침은 1층이 5단, 2층은 4단, 3층은 3단이어서, 위로 올라갈수록 받침수가 줄어드는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지붕돌 윗면의 낙수면은 평박(平薄)한 편인데, 네 귀퉁이 전각(轉角)의 반전과 잘 어울려 둔중한 느낌은 없어 보인다. 다만 석탑에서는 흔하게 보이지 않는 두툼한 귀마루가 조각되어 있다. 각 층의 몸돌 굄은 지붕돌 윗면에 1단씩 마련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석(露盤石) 하나가 남아 있고, 그 중심에는 찰주를 꽂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이 석탑은 암반을 이용하여 견고한 바닥과 평평한 탑구를 만들고, 사리장엄구를 봉안하는 등 여러 가지 특징을 담고 있다. 오래 전에 쓰러져 각 부재가 곳곳에 흩어졌던 것을 1996년 1월 4일∼4월 3일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복원 공사 때 암반과 받침돌 사이에서 금동보살좌상 1구, 백자 사리호 1점, 청자 대접 1점, 사리 32과, 철 조각 11점 등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