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경은 중국에서 작성한 것을 석가모니부처의 가르침이라고 하여 만든 불교 경전이다. 중국에서는 불교를 받아들이며 인도어였던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역경 작업이 성행하였다. 그러던 중 특정 이유와 필요에 의해 중국적 사상을 담은 경전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석가모니부처가 설한 것이라고 하며 경전의 권위를 부여하여 보급하였다. 후대에 중국에서 위조하여 만든 경전이라는 의미로 위경, 혹은 의심되는 경전이라는 의미에서 ‘의경’이라고 부르면서, 부처의 말씀을 충실히 기록한 것을 ‘진경’이라 하여 구별하였다.
중국에서는 한(漢)과 위(魏) 때 인도와 주1에서 전해 온 주2의 한문 번역이 성행하였는데, 같은 시기에 중국적 사상을 담아 특정 이유와 필요에 의해 경전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전까지는 경전의 주3와 같은 형태로 주4를 만들기는 하였으나, 중국의 불교도들은 부처의 가르침과 사상을 담아 새로운 경전을 만들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부처의 원음이 아니기에 위조되어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위경(僞經)’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경은 중국적 사상과 문화를 담고 있었기에 많은 불교도들에게 보다 이해하기 쉬웠고, 그로 인해 그 유포도 무시할 수 없었는데, 상당히 이른 시기인 동진(東晉) 시대에 이미 위경이 유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안(道安)주5의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에는 위경의 목록이 수록될 정도로 4세기 중엽부터 위경은 중국 불교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고, 진경(眞經)과 구별된 위경이라는 인식도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승우(僧佑)의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권5에는 「신집안공의경록(新集安公疑經錄)」을 안배하여 도안이 파악한 『보여래경(寶如來經)』 2권 등 26부 30권의 위경을 인용, 수록하였고, 이 기록이 후대로 전해지며 위경에 대한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로도 중국 불교 내에서는 위경에 대해 확인하였고, 여러 주6 목록에서 별개의 항목으로 구분하여 다뤄질 정도였다. 특히 중국 불전 목록 중에서 가장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승(智昇)의 주7 권18에서는 위경에 대해 「의혹재상록(疑惑再詳錄)」 14부 19권, 「위망난진록(僞妄亂眞錄)」 392부 1,055권으로 수록하여 그 항목의 명칭에서부터 위경임을 드러내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양이 이미 수천 권에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표적 불전 목록인 원조(圓照)의 『정원신정석교목록(貞元新定釋敎目錄)』에서도 「의혹재상록」 14부 19권, 「위망난진록」 391부 1,491권을 위경으로 분류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4세기 중엽부터 다양한 시도로 위경이 만들어지고 보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중국적 사상이나 문화를 불교에 유입시키기 위해서거나, 특정 종파나 수행에 대해 불교적 권위를 지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위경은 어떠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 경전을 통해 불교도가 해당 가르침을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위경의 제작 목적을 한 가지로 정리하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큰 분류에서 살펴보면, 우선 중국의 토속신앙을 불교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 『시왕경(十王經)』, 『고왕관세음경(高王觀世音經)』 등이 있다. 이것들은 불교의 주8을 중국 토속신앙 속의 신, 왕에 빗대어 설명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가르침이 중국의 도(道)의 개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담고 있다. 그리고 불교 승가의 출가자인 비구, 비구니와 달리 대승보살로서의 삶과 수행을 담은 『범망경(梵網經)』이 제작되어 중국의 효(孝)를 수행으로 끌어올린다. 호국불교라는 특별한 개념을 위해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제작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이 불교를 지키는 것이며, 부처와 왕을 동일시한 왕즉불(王卽佛)이라는 사상도 만든다. 나아가 중국의 유교, 도교를 불교와 조화시켜 민심을 선도할 목적으로 공자를 유동보살(儒童菩薩), 안회(顔回)를 광정보살, 노자(老子)를 마하가섭으로 하는 『청정법행경(淸淨法行經)』과 같은 위경도 등장하게 된다.
중국의 위경은 한반도의 불교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대표적으로 『불설대목련경(佛說大目連經)』과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 있다. 이 두 위경은 현재까지도 불교의 여러 행사에서 독경되고 있는 주요한 경전이기도 하다. 『불설대목련경』은 주9의 내용을 담고 있는 위경으로, 백중(百中)과 조화를 이루어 민간의 행사와 불교의 의례가 합쳐진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우란분경(盂蘭盆經)』의 내용까지 더해져 현재에도 사찰에서 백중과 우란분절을 주10에 치루고 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도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효도와 밀접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백중이나 조상의 천도에 독경되며 현재까지도 널리 보급된 대표적 위경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의례와 염불을 위한 위경도 널리 보급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천수경(千手經)』이다. 『천수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의례용 위경으로 현재도 거의 대부분의 사찰에서 독경하고 있다. 『천수경』은 그 구조가 독특한데, 본래는 내용 중에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라는 「대비주」가 『천수경』의 핵심이며, 그 전후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찬탄하는 내용과 불교의 여러 다라니와 진언을 더해 만들어진 종합 의례용 경전이다. 『천수경』은 한역본으로 전해지는 것이 약 10종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당(唐) 가범달마(伽梵達磨)의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觀自在菩薩廣大圓滿無礙大悲心陀羅尼經)』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위경과 같은 경전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편찬된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도 현재까지도 많은 사찰에서 독송되고 집전되는 것이다. 이 참법은 양무제가 황후 치씨를 위하여 편집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중생들이 살아가며 저지른 원한이나 온갖 죄를 이 참법을 통해 죄를 씻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를 담아 제작된 불교 의식집이다.
한반도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여러 위경들이 널리 보급되었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사상과 정서를 담은 한반도에서 제작된 위경도 등장하게 된다. 특히 1298년 공산 거조사의 승려 원참이 불설(佛說)을 빌어 정토왕생의 방편을 설한 『현행서방경(現行西方經)』이 대표적인데, 당시 유행하던 선, 정토, 밀교, 점복, 민간요법 등 다양한 요소를 섞어서 말세의 중생이 참회를 하여 부처의 위신력을 받아 죄업을 씻고 정토왕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점찰선악업보경』의 영향을 받아 표찰을 던져 내생을 점치는 행위를 하고 그것으로 정토왕생의 참회법을 닦게 하는 방편을 담고 있다.
위경과 더불어 논서도 제작되었는데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주석서로서, 용수(龍樹)가 찬술하고 401년 벌제마다(筏提摩多)가 번역하였다고 전해지지만, 8세기부터 위찬설이 제기되었고 일본의 안넨(安然, 841~899)에 의해 ‘신라 중조산 승려 월충(月忠)이 위작’한 것이라 하여, 한반도에서 제작된 논서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논서는 당시의 『대승기신론』의 주석이 현수 법장의 해석에 의존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신라 원효의 해석까지도 인용하고 두 주석을 비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라인이 찬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위경은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의 경전을 역경하는 것을 넘어 중국적 사상을 담아 필요에 의해 제작된 경전이다. 부처가 설한 내용이 아닌 것을 불설이라 허위로 지칭하며 만들어졌기에 분명 진경(眞經)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담고 있는 가르침에 불교의 사상이 담겨져 있고, 그를 통해 동아시아에 불교가 정착하고 신앙화되는데 큰 공헌을 하였기에, 현재는 위경이라는 표현을 학술적으로는 사용하지만, 불교의 의례나 독경에서는 따로 구분짓지 않고 일반적인 경전과 같이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