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손 형제 화회문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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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문신 유의손의 4형제가 화회하여 노비를 분재한 문서. 분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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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문신 유의손의 4형제가 화회하여 노비를 분재한 문서. 분재기.
내용

이 문서는 원상태로 보존되지 않고 보관의 편의상 적절히 절단하여 배접하였기 때문에 문서가 착종되기도 하였고, 곳곳에 충식(蟲蝕)과 탈락이 심하다.

유의손은 부사(府使) 유빈(柳濱)의 아들로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집현전수찬을 거쳐 도승지, 이조참판, 예조참판을 역임하였고, 문장이 뛰어났다.

이 문서는 서두의 탈락으로 작성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세종 말년이나 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장지에 행서로 쓰여졌고, 크기는 세로 70㎝, 가로 265㎝이며, 115항에 자수는 일정하지 않다. 내용은 서두, 봉사조(奉祀條), 4형제의 분깃노비수, 장손 및 기타 내외손자들에게 나눈 노비 및 말미에 분재당사자들의 날인과 수결(手決)이 있다.

노비의 총수는 381구(口)로 4형제에게 균분되었으며, 봉사몫이 6구, 장손에게 11구, 내외손자 8인에게 각 1구씩 분급하였다. 부산의 유탁일(柳鐸一)이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경북지방고문서집성(慶北地方古文書集成)』(이수건, 영남대학교출판부,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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