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영남 지방의 유림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파리장서에 서명하였으며, 『서파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또한, 고조부인 유정원(柳正源)으로부터 전하여져오는 역학(易學)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시경』에도 조예가 깊어 새로운 주석을 시도하였다. 스승 유치명의 『정재집(定齋集)』 원집과 속집을 편집하였다.
1919년 파리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자 영남을 주축으로 한 한국 유림은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이때 파리장서에 서명하여 항일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이 거사를 전후해서 남도에는 곽종석(郭鍾錫)이요, 북도에는 유필영이라 하여 남곽북유(南郭北柳)라고 불렸다.
유필영은 서파정사(西坡精舍)에 몰려드는 후진을 양성하는 방법으로 먼저 시(詩)로써 마음을 발양(發揚)시키고 다음에 예(禮)로써 율기(律己)하도록 하였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호정(戶庭)의 출입도 삼가하였다. 또한 기미년만세사건에 연루되어 성주에까지 연행되기도 하였다. 저서로 『서파문집(西坡文集)』 26권 13책이 있다.
참고문헌
- 『서파문집(西坡文集)』
- 『유학근백년』(금장태·고광직, 박영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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