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달(景達). 호는 서파(西坡). 안동에서 세거하였다. 아버지는 유정진(柳定鎭)이며, 어머니는 예천권씨(醴泉權氏)로 권교상(權敎相)의 딸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이고, 권연하(權璉夏)·이만각(李晩慤)·김흥락(金興洛)·김도화(金道和) 등과 교유하였다.
집안에 전하여지는 학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14, 15세의 나이로 사서삼경은 물론 제자서(諸子書)에까지도 박통하여 영남의 문맥을 이어받았다는 칭예를 받았다. 후일 유치명에게 수학하고 돌아와서 주서(朱書)를 탐독하고는 학문의 심오한 경지를 터득하였다.
또한, 고조부인 유정원(柳正源)으로부터 전하여져오는 역학(易學)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시경』에도 조예가 깊어 새로운 주석을 시도하였다. 스승 유치명의 『정재집(定齋集)』 원집과 속집을 편집하였다.
1919년 파리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자 영남을 주축으로 한 한국 유림은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이때 파리장서에 서명하여 항일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이 거사를 전후해서 남도에는 곽종석(郭鍾錫)이요, 북도에는 유필영이라 하여 남곽북유(南郭北柳)라고 불렸다.
유필영은 서파정사(西坡精舍)에 몰려드는 후진을 양성하는 방법으로 먼저 시(詩)로써 마음을 발양(發揚)시키고 다음에 예(禮)로써 율기(律己)하도록 하였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호정(戶庭)의 출입도 삼가하였다. 또한 기미년만세사건에 연루되어 성주에까지 연행되기도 하였다. 저서로 『서파문집(西坡文集)』 26권 1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