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황해도관찰사, 주청부사, 부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복관되어 1617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1624년(인조 2)에는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25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한 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부체찰사(副體察使)를 겸직하여 적과 싸웠다.
그러나 안주를 빼앗긴 뒤 평양에서 싸우고자 하였지만 병력과 장비의 부족으로 종사관(從事官) 홍명구(洪命耉)의 건의를 받아들여 다시 성천으로 후퇴하였다. 이로 인하여 황해병사 정호서(丁好恕)도 싸우지 않고 황주를 포기하는 등, 전세를 불리하게 하였다는 죄로 체포되어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형 윤방을 비롯하여, 조카 윤신지(尹新之)의 아내이며 인조의 고모인 정혜옹주(貞惠翁主)가 구명운동을 벌였으나 강화도에서 효수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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