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송당집』은 총 4책으로 원집 12권과 속집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과 속집 모두 목판으로 간행되었고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려대학교, 간송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은송당집』은 원집과 속집으로 나누어서 간행되었다.
작자는 중국 연경(燕京)에서 간행할 목적으로 자편고(自編稿)를 가지고 가서는 1848년(헌종 14)에 청(淸)나라 사람인 오찬(吳贊)의 주관하에 목판으로 원집을 간행하였다. 그 이후 1859년(철종 10)에 다시 연경으로 갔을 적에 공헌이(孔憲彛)의 주선으로 만난 허종형(許宗衡)에게 속집의 서문을 받고, 1860년대 초에 공헌이의 주관하에 속집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은송당집』은 중국의 우박계관(藕舶溪館)에서 간행되었고, 속집에 구간기(舊刊記)와 자서(自序)가 있다.
『은송당집』의 체재는 다른 문집에 비하여 특이하다. 문(文)과 시(詩)가 별도의 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일부 목차가 없는 것도 있다. 또한 시는 연대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권 110은 시 292수, 속집 권 110은 시 206수, 권 1·2는 문 18편, 속집 권 1·2는 문 3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적(李尙迪)의 시는 만당(晩唐)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고 화려한 특징이 있다. 헌종이 이상적의 시를 애송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아호 ‘은송(恩誦)’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은송당집』은 문(文) 중에 그림 · 먹 · 글씨 · 그릇 · 금석문 등에 관한 참고 자료들이 있다. 그것은 「증조고증참판공수서시경첩후서(曾祖考贈參判公手書詩經帖後序)」 · 「원인기(院印記)」 · 「사변추령증지묵계(謝卞秋舲贈紙墨啓)」 · 「사김추사각학증묵란계(謝金秋史閣學贈墨蘭啓)」 · 「정벽산선생묘지명(鄭碧山先生墓誌銘)」 · 「서삽할(書鍤瞎)」 · 「체화관화책서(棣華館畫冊序)」 · 「제동파서금강경후(題東坡書金剛經後)」 · 「연천명인화상발(練川名人畫象跋)」 · 「소연명(小硯銘)」 · 「진함강전연명(晉咸康塼硯銘)」 · 「옥정연명(玉井硯銘)」 · 「방고와연명(仿古瓦硯銘)」 · 「금성연명(金星硯銘)」 · 「한장생무극와연명(漢長生無極瓦硯銘)」 · 「고천묵상명(古泉墨牀銘)」 · 「서원아집도죽필통명(西園雅集圖竹筆筒銘)」 · 「수우명(水盂銘)」 · 「제소문충공입극도(題蘇文忠公笠屐圖)」 · 「독언록(讀焉錄)」 · 「이우상선생전(李虞裳先生傳)」 · 「신라진흥왕순수비탁문서후(新羅眞興王巡狩碑拓文書後)」 등이다.
『은송당집』의 「신라진흥왕순수비탁문서후」에서 저록가(著錄家)들은 신라 진흥왕 순수비의 건립 연대를 568년(진흥왕 29)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상적은 그 비문 속에 ‘眞興太王(진흥태왕)’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비의 건립 연대가 그 이후라 하였다. 재위 기간에 시호인 ‘진흥’이 쓰였을 리 없고, 스스로 높여 ‘태왕’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진흥왕 사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았다.
『은송당집』은 역관(譯官)으로서 문학 활동이 활발했던 이상적의 문학적 성취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당대 청나라 문인 지식인과 교유하면서 남긴 수많은 시문학 작품들, 그리고 금석학과 서화에 관한 자료들은 조선 후기 문학사 및 예술사 연구 측면에서도 매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