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축년에는 4번에 걸친 홍수가 있었는데, 1차 홍수는 7월 7일 대만 부근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태풍)이 11일과 12일에 중부지방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빠져나가면서 발생하였다. 그로 인하여 황해도 이남 지방에 300∼500㎜의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한강·금강·만경강·낙동강 등이 범람하였다.
1차 홍수로 인한 피해가 복구되기도 전인 7월 14일 다시 대만 부근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이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의 황해를 지나면서 그 우측 반경에 들어간 임진강과 한강 유역에 집중호우를 내렸다. 16·17·18일 계속 내린 비는 한강과 임진강의 분수계 부근에서 최고 650㎜에 달하였고, 이로 인하여 임진강과 한강이 크게 범람하였다.
18일 한강의 수위는 뚝섬 13.59m, 인도교 11.66m, 구용산 12.74m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한강의 물이 제방을 넘으면서 3만여 정보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 침수되었다. 이 때 가장 피해가 심하였던 곳은 동부이촌동·뚝섬·송파·잠실리·신천리·풍납리 등이었다. 이 당시 용산의 철도청 관사는 1층 천장까지 물이 찼고, 용산역의 열차가 물에 잠겼다. 또한 뚝섬에 샛강이 생겨 신천(新川)이라는 지명이 생겼고, 지금은 자취를 감춘 피수대(避水臺)의 느티나무 윗가지까지 물이 찼다.
3차 홍수는 8월 들어 중국 양쯔 강 유역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황해로 나온 후, 한만국경(韓滿國境)을 지나 만주의 간도지방으로 나가면서 관서지방에 호우를 내렸다. 이 당시 대동강·청천강·압록강 등이 범람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4차 홍수는 8월 말 마리아나(Mariana) 제도 부근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이 9월 초 목포와 대구를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남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렸고, 낙동강·영산강·섬진강 등이 범람하였다.
이와 같이 4회에 걸친 호우로 인하여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가옥 유실 6363호, 붕괴 1만 7045호, 침수 4만 6813호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논 3만 2183단보, 밭 6만 7554단보 등이 유실되어 피해액은 무려 1억 300만 원에 달하였다. 이 금액은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약 58%에 해당하는 엄청난 것이었다. 을축년홍수는 한강 유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고의 대홍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