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보리사지 금동 여래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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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
조각
유적
국가유산
부산광역시 서구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에 소장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동조도금 불상.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宜寧 菩提寺址 金銅如來立像)
분류
유물/불교조각/금속조/불상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2년 02월 26일 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부민동2가, 동아대학교부민캠퍼스) 동아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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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에 소장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동조도금 불상.
개설

198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보리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한다.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불상이다. 현재 광배는 결실되었으나 대좌와 불신은 비교적 손상이 적고 잘 보존되어 있다.

내용

얼굴은 둥근 편으로 이목구비의 각선(刻線)이 뚜렷하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모습이 선정(禪定)에 든 듯한 고요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머리에는 육계(肉髻)가 솟았는데 거의 정삼각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머리가 높게 보인다.

몸에는 통견(通肩)의 옷을 걸치고 있으며, 대의 안으로 비스듬히 군의(裙衣)와 그것을 묶은 띠 매듭이 선각되었다. 대의는 배 부근에서부터 다리 아래까지 부드러운 U자형 곡선을 이루고 있다. 양쪽 자락은 두 팔에 걸쳐 신체의 윤곽선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다. 두 손은 다소 손상되었으나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결(結)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좌는 불신(佛身)에 비하여 비교적 높은 편이다. 8면에 안상(眼象)이 투각(透刻 : 뚫새김)된 받침대 위에 높직한 족좌(足座)가 놓였다. 대좌의 기본 형태는 통일신라 금동불대좌의 일반적인 형태와 유사하다. 하지만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이 조각되지 않고 극히 간단한 선으로 꽃잎의 끝 부분만을 표현하는 등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단순한 모습을 보여 준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명상에 잠긴 듯한 부드럽고 고요한 표정이라든지 선각으로 간결하게 묘사한 옷주름, 각선이 거의 배제된 단순한 대좌의 모습 등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단순한 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국보』2 금동불·마애불(황수영 편, 예경산업사, 1984)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 연구」(지강이, 『미술사학연구』 292, 한국미술사학회, 2016)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임영애, 『문화재대관 보물 불교조각 Ⅰ』, 문화재청,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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