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0월부터 1983년 1월까지 매월 발간되었다. 국제복장학원에서 계간으로 1년간 발행되었던 『패션』의 후신이다. 1968년 6월 문공부에 정기간행물 등록을 한 뒤 10월에 창간되었다.
발행은 당시 국제복장학원의 최경자가 맡았고, 편집은 고정기가 담당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패션계는 사실상 양장점 중심의 양재업계와 시장의 값싼 기성복업계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어느 경우에나 그 규모나 내용이 소규모이고 영세하였다.
또한 전문 의상교육을 받은 인력도 부족한 상태였다. 각 대학 가정과에서 의류학을 전공한 졸업생들이 배출되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양장업계 진출은 미미하였고, 양재학원을 중심으로 한 단기교육을 받은 인력이 대부분이었다. 해외와의 정보교류도 오늘날에 비하면 극히 미약하였다.
해외의 패션정보는 외국의 잡지, 특히 일본의 패션지를 통하여 수입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당시 상황에서 국내 패션지의 필요성을 절감한 최경자에 의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지가 창간되었던 것이다.
『의상』은 국내 패션지로서 신속한 해외 패션정보의 전달과 국내 패션의 연구를 목적으로 발간되었다. 이와 더불어 잡지를 통한 양재교육과 재교육, 합리적 의생활에도 그 목표를 두었다.
『의상』은 날로 발전하여 가는 의상업계와 발맞추어 많은 진전을 거듭하였다. 1975년 5월에 일본의 패션전문지 『빌리지』와 정보교환 친선협정을 맺고, 그해 11월에는 의상사의 대표였던 최경자가 문화공보부로부터 한국잡지문화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잡지의 성격상 화보가 많아 제작비의 압력이 가중되고, 이에 비하여 전문잡지로서의 독자층은 한정되어 1983년 폐간되었다. 그 뒤 동아일보사에서 인수하여 월간지 『멋』으로 발간되었으며, 일반 독자와 전문인을 대상으로 한 종합지로 발간되고 있다.
한편 최경자는 패션전문인을 위한 정보지의 성격을 가지는 『패션정보』를 발간하여 『의상』의 맥을 잇고 있다. 1960년대말부터 1980년대초까지 국내 패션계가 비약적 발전을 하던 시기에 『의상』은 외국에 비하면 그 수준이 초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국내 최초의 유일한 패션지로서 역할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특히 일본어가 대부분이었던 양재용어를 한글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던 사실과 당시 유행에 관한 정보를 오늘에 전하고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