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돌천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평택농악」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94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9년
  • 출생지경기도 장호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현경채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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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평택농악」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내용

경기도 장호원 출신. 주 특기는 법고이다. 10대에 충청남도 천안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다. 16세때 마을 상쇠에게 쇠를 배웠고, 천안시 쌍용동의 농악대에서도 풍물을 배웠다. 천안 인근 걸립패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8세 때에 남운용(南雲龍)에게 농악을 배웠고, 그 후 서울에서 남운용을 중심으로 옛 명인들이 다시 모여 만든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법고수로 있었다. 천안농악에서 상쇠로도 활동했다. 1980년 평택농악을 창단할 때 합류했으며, 1980년 제21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 평택농악단의 상버꾸로 출연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1985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법고의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참고문헌

  • -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2-평택농악-』(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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