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박노홍(朴魯洪). 필명 이사라(李史羅)·강영숙(姜榮淑) 등. 충청남도 부여 출생.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만주 용정촌(龍井村)에서 소년기를, 충청북도 청주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1931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서 시조「봄빛」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7년경부터 빅타레코드사 문예부에 적을 두고 대중가요 가사를 많이 발표하였다.
1938년 이후 전수린(全壽麟) 작곡의 「나는 열일곱 살」(박단마 노래)·「아이고나 요 맹꽁」·「외로운 가로등」, 박시춘 작곡의 「애수의 소야곡」(남인수 노래) 등이 유명해진 노래들이다. 1943년 가극「아리랑」의 각본을 씀으로써 극작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광복 직후 남인수의 노래 「가거라 삼팔선」의 작사를 하여 작사가의 자리도 굳혀 놓았다. 곧바로 현대악극단을 조직, 운영하면서 수많은 음악공연물의 극본을 썼다. 1951년 피난시절 대구에서 국극(唱劇) 각본 「열녀화(烈女花)」를 연출, 공연하였고 수복 후 창극단의 극본을 주로 썼다.
1957년 극영화 「봉이 김선달」을 제작하면서「밤마다 꿈마다」 등의 극영화를 제작, 감독하였고 본격적으로 영화사도 차렸다. 1960년 국제친선문화협회를 조직하여 6·25동란 때 우리나라를 위하여 참전하였던 16개국과의 문화교류사업을 시작하였다.
1961년 3월 영화계의 원로 윤봉춘(尹逢春)·서월영(徐月影)·방의석(方義錫) 등과 함께 한국영화 40년 기념 전시회를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최하였다. 그 뒤 누이의 과수원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말년에 한국레코드사·악극사·창극사·극장사 등을 집필하던 중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