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소리산현(所利山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이산으로 고쳐 관성군(管城郡: 지금의 옥천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경산(京山: 지금의 성주)에 이속시켰다가 1176년(명종 6) 감무를 두었다.
충선왕 때 다시 옥천의 속현으로 하였고, 조선시대에 직촌이 되어 이내면(利內面)과 이남면(利南面)으로 남았다. 1895년(고종 32) 이내면(伊內面)으로 고치고 1929년 이원면(伊院面)이 되었다.
이산의 지명유래는 소리산에서 나온 것인데, 소리(所利)는 소부리(所夫里)와 같은 뜻을 가지는 것으로 ‘수읍(首邑)’을 나타낸다. 즉, 소리산은 삼한시대 부족국의 도읍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형적으로 동쪽에는 금강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삼면은 어리산(於里山)ㆍ지륵산(智勒山)ㆍ월이산(月伊山) 등에 막혀 있어 하나의 커다란 분지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월이산에 봉수가 있었고 이산창(利山倉)과 함께 토파역(土坡驛)이 있었다. 북쪽으로는 옥천, 남쪽으로는 무주와 이어졌고, 동쪽으로는 영동, 서쪽으로는 진산(珍山)과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