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정언, 장령,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퇴숙(退叔)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673년(현종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장령|헌납
  • 출생 연도1612년(광해군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장령,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퇴숙(退叔). 종실 안남도정(安南都正) 이수련(李壽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천군(瑩川君) 이정(李挺)이다. 아버지는 이세헌(李世憲)이며, 어머니는 이찬(李璨)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지평·정언·장령·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 5) 서필원(徐必遠)의 상소를 두고 준론(峻論: 강경한 대처론)과 완론(緩論: 온건한 대처론) 사이에 의논이 분분하여지면서 점차 격렬해지자, 이를 정계(停啓: 계문 올리는 것을 중지함.)시키고자 노력하였다.

1671년(현종 12)에는 각 도에 기근과 전염병이 크게 돌아 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는데 수령들의 보고만을 믿고 더 유의하여 깊이 살피지 아니하는 관찰사들을 파직하도록 탄핵하기도 하였다. 또 이 때를 당하여 재판이 지체되는 폐단이 심하므로 옥에 갇힌 죄인을 오래 머물러 두고 판결하지 않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1667년에는 청주목사(淸州牧使)로서 청주에 수감되어 있던 살인한 죄인이 신문을 받고 형의 확정을 받은 뒤, 거짓으로 옥중에서 죽자 곧바로 시친(屍親)에게 내어 주었는데, 여러 달 도망하였다가 발각이 되었다. 이에 이를 제대로 검시하지도 않은 채 일을 처리하였다 하여 탄핵당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