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함경남도 이원 지역의 옛 지명.
내용
고려 성종 때 수복하여 아사현(阿沙縣)이라 하였으며, 그 뒤 다시 여진에게 점유되었다. 1107년(예종 2) 윤관(尹瓘)의 북벌에 의하여 9성을 쌓고 복주(福州: 지금의 단천군)에 소속시켰다가 다시 여진에 돌려주었고, 1258년(고종 45)부터 약 100년간 몽고의 쌍성총관부에 속하였다.
1356년(공민왕 5) 수복하여 복주에 소속시켰으며, 이성보(利城堡)를 두고 통치하다가 1436년(세종 18)단천군의 마운령 이남 및 북청부(北靑府)의 동쪽 다보사(多甫社) 이북의 땅을 분할하여 이성현을 설치하였고, 정조 때 지금의 이름인 이원현(利原縣)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시켰다.
윤관이 9성을 쌓은 뒤 마운령관(摩雲嶺關)은 해안지방 국경초소의 구실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단천과 남쪽의 북청을 군사ㆍ교통상으로 이어주었다. 성문·진조봉봉수(眞鳥峰烽燧)가 해안지방에 설치되었으며, 보발(步撥)로 나하동(羅下洞)·시리(施利)·곡구(谷口) 등에 참(站)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철이 생산되었다. 명승유적으로는 쌍암해안(雙巖海岸)·한당사(閑堂寺)·반룡사(盤龍寺)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여지도서(輿地圖書)』
- 『함경남도지』(함경남도지편찬위원회, 196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