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의 손자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강양도정을 역임하였으며, 강양군에 봉해진 종실.
이칭
  • 이칭금헌(琴軒), 양정(陽井), 양촌(陽村)
  • 쌍송(雙松), 오향정(五香亭)
  • 회보(晦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499년(연산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강양도정(江陽都正)
  • 출생 연도1453년(단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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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의 손자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강양도정을 역임하였으며, 강양군에 봉해진 종실.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쌍송(雙松) · 오향정(五香亭) · 금헌(琴軒). 초명은 융(瀜)이다. 세종의 손자이고, 생부는 계양군 이증(桂陽君 李璔), 생모는 좌의정 한확(韓確)의 딸이다. 후에 담양군 이거(潭陽君 李璖)의 계자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세조의 극진한 총애를 받아 1455년(세조 1) 3세에 특별히 강양도정(江陽都正)이 되었고, 이후 다른 종친과는 달리 궁내에 거처하면서 세조가 정하여준 사부(師傅)로부터 수학하였다. 세조대를 통하여 내종친(內宗親)의 한 사람으로서 궁내에서 세조를 시종 및 세조의 크고 작은 행행(行幸)에 수행하였다.

1467년 강양군(江陽君)에 책봉되었고, 1484년(성종 15) 전년의 정희왕후(貞熹王后) 국상에 수반된 세조능 시릉(侍陵)의 노고로 소덕대부(昭德大夫)에 품계가 오름과 아울러 왕명에 의하여 제종친의 비위를 규찰하였다.

이후 독서 · 산수 · 탄금을 즐기면서 자적하다가 죽었다. 단아하고 근실한 성품, 정순한 학문 및 능숙한 음률로 명망이 있었다. 묘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산(坡平山)에 있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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