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윤지(胤之), 호는 단릉(丹陵) 또는 담화재(澹華齋). 이색(李穡)의 14대손으로 담양부사 이기중(李箕重)의 아들이며, 판서 이태중(李台重)의 조카이다.
일찍이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산수와 더불어 평생을 보냈다. 평소에 단양의 산수를 좋아하여 즐겨 찾더니, 부친이 담양 부사로 재직한 일을 계기로 구담(龜潭)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지냈기 때문에 단릉산인(丹陵散人)이라 하였다.
윤리에 돈독하고 강직한 지조를 존중하여 이인상(李麟祥)과 절친한 벗으로 지냈다. 성품은 후덕하고 명료하였고, 큰아버지 태중의 영향으로 고기물(古器物)을 즐겼다고 한다.
노론의 문사들인 송문흠(宋文欽), 김종수, 김무택(金茂澤), 신소(申昭), 황경원(黃景源) 등과 교유하며 지은 많은 시문이 『단릉유고(丹陵遺稿)』, 『단릉산인유집(丹陵散人遺集)』에 실려 있다. 글씨는 특히 예서와 전서에 뛰어나 이인상의 그림에 화제(畵題)를 많이 썼다.
그림의 소재로는 모정을 중심으로 한 누각산수, 바위와 소나무, 연꽃 등을 주로 그렸다. 명대 오파(吳派)와 안휘파(安徽派) 화풍을 수용하여 문기 있고 깨끗한 표현을 구사하였다. 그의 그림은 이인상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나 필치가 한결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청호녹음도(淸湖綠陰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송초루도(經松草樓圖)」(개인 소장) 등과 같은 전형적 문인화풍의 그림과 「삼척능파대(三陟凌波臺)」(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고란사도(皐蘭寺圖)」(개인 소장)와 같이 실경을 남종화풍으로 그린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