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원본은 현존하지 않고, 그 내용이 조선 후기에 편찬된 『진보이씨세보(眞寶李氏世譜)』에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본래 이 홍패는 이자수의 후손인 이황(李滉)이 1549년(명종 4) 풍기군수로 있을 당시 그 곳에 살고 있던 친족 이호(李壕) 등의 집에서 이자수의 고신(告身) 18폭과 함께 확인한 바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원본은 족보와 가승(家乘)을 편찬할 때 전재되었고 원본은 그 뒤 유실된 것 같다. 종이질과 규격은 알 수 없으나 체제는 7항에 자수는 일정하지 않으며, 서식은 고려의 홍패 형식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