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미소(微笑). 천도교소년회 회원으로 일찍부터 아동문화운동에 참가하였다. 개벽사(開闢社)에 입사한 이후 방정환(方定煥)을 도와 『어린이』·『신여성(新女性)』 등 잡지를 편집하는 한편, 최병화(崔秉和)·연성흠(延星欽) 등과 함께 아동문학연구단체인 ‘별탑회’를 조직하여 아동문화운동에 진력하였다.
동요 「망두석재판」(신가정 7, 1933.7.), 동화 「아가씨와 요술할멈」(조광, 1935.11.)·「농부와 토끼」(매일신보, 1927.1.1.)·「이상한 연적」·「정의는 이긴다」 등 전래동화의 개작과 창작동화을 발표하였다.
한편, 「사랑의 학교」(1929) 등 외국 작품의 번역과 동화구연(童話口演) 활동에 치중하였다. 주로 전설·미담·시사과학 등 잡문을 통한 아동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작가 생활을 일관하였다.
방정환의 『사랑의 선물』과 함께 자신이 엮은 『세계일주동화집』(이문당, 1929)을 무덤 속에 묻어 달라는 유언은 유명하다. 그가 처음으로 번안 소개한 『사랑의 학교』는 당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민족적 자각을 깨치는 데 적절한 작품이 되었다. 또한 『세계일주동화집』은 세계 각국의 주옥같은 동화들을 번안하여 수록한 것이었다.
이러한 번안작업 외에도 창작동화를 발표하였는데 이들의 특징은 순수 창작적 요소보다는 옛이야기 방식으로 풀어 쓴 듯한 느낌이 강하고 우의적 요소(寓意的要素)를 가미한 동화들이다. 내용은 대체로 우정·정의·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으로 짜여져 있다.
주로 잡지편집을 하면서 얻은 다방면에 걸친 읽을거리를 썼는데 그러한 태도는 그가 아동문화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모습이었다. 또한 구연동화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동화회(童話會) 혹은 동화 방송으로 많은 어린이들에게 정신적 양식을 키워준 사실은 길이 기억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