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남창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9년에 간행한 시문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남창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9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59년 남창희의 아들 남상일(南相一)이 간행하였다. 권말에 아들 남상룡과 남상일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19권 10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316수, 권2∼12에 서(書) 461편, 권13∼16에 잡저 57편, 권17·18에 서(序) 5편, 기(記) 8편, 발(跋) 9편, 명(銘) 5편, 축문 10편, 제문 45편, 권19에 묘표 9편, 묘갈명 9편, 묘지명 2편, 행장 8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분량도 방대하지만 내용도 다양하다. 스승 정재규(鄭載圭)·정면규(鄭冕圭) 형제와 왕복한 편지에서는 하학(下學)은 일[事]이고 상달(上達)은 이치[理]임을 논하였다. 송재락(宋在洛)과는 『중용』을, 최환모(崔煥模)와는 예설을, 동문 유원중(柳遠重)과는 심즉리설(心卽理說)을 논의하였다.

심즉리설에 대해 스승 정재규는 기정진(奇正鎭)의 설을 따랐고, 기정진은 주자의 학설을 신봉했다고 천명하였다. 또한, 스승의 ‘심통이성위조리(心統理性爲條理)’를 마음은 이치라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많은 동문들과 이견을 빚어 왕복서신이 매우 많았다. 그 중 숙부 남정우(南廷瑀)와 논쟁한 내용이 잡저 「비봉질태극도해근사록의목겸논입암숙답설(批奉質太極圖解近思錄疑目兼論立巖叔答說)」에 담겨 있다.

또, 경(敬)을 이치라고 주장하는 일파들과도 성군경신(誠君敬臣)을 주장하여, 그들의 경이 존리제기(存理制氣)라는 설을 반박하였다. 이 밖에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를 논하면서 태극도에서 이를 규명하여 서로 다르다고 하고, 명덕(明德)을 이(理)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

잡저의 「대학초의(大學抄義)」와 「중용초의(中庸抄義)」는 각기 『대학』과 『중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혹은 본문에서 혹은 주석에서 핵심부분을 간추려 설명한 것이다. 「인물성동이설(人物性同異說)」은 인간과 다른 만물의 성(性)은 서로 다르나 그 기(氣)는 서로 비슷하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이한주음양동정유점차설변(李寒洲陰陽動靜有漸次說辨)」에서는 태극의 동정은 곧 음양인 까닭에 동정 다음에 점차 음양이 성숙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이 밖에도 이진상(李震相)의 심즉리설을 반박한 「변한주발출부동저시성(辨寒洲發出不同底是性)」, 곽종석(郭鍾錫)의 학설에 대한 기의(記疑), 『소학』을 논한 「논김이회대면우소학발문(論金而晦對俛宇小學發問)」, 송시열(宋時烈)의 예설을 반박한 「기해예설기의(己亥禮說記疑)」와 「독한남당예설(讀韓南塘禮說)」 등이 있다.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