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출생. 가요작곡가 김용환(金龍煥)에게 발굴되어 1936년 뉴코리아레코드사에서 신민요풍의 노래 「섬시악시」와 「새봄맞이」 두 곡을 녹음하였다.
당시 인기 절정이던 민요가수 왕수복(王壽福)·선우일선(鮮于一扇)을 능가하는 민요가수로 주목을 끌었다. 계속해서 「왜그렁타령」·「남원의 봄빛」·「아지랑이 콧노래」·「참말 딱해요」·「천리몽(千里夢)」 등을 음반으로 출반하여 그의 인기가 날로 높아갔다.
1938년 오케레코드사에서 거액을 내놓아 전속시키고, 김해송 작곡인 「화류춘몽」, 박시춘(朴是春) 작곡인 「목단강 편지」 등이 새로 나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앞서 김용환 작곡의 「꼴망태 목동」·「님전 화풀이」또한 인기곡이 되었다.
오케레코드사에서 1943년까지 수많은 민요풍의 노래를 녹음하였으며, 대개가 박시춘·김용환의 작품들로「화류춘몽」·「물방아」·「허송세월」·「초가삼간」·「삽살개타령」·「신 오돌독」·「신 노들강변」·「겁쟁이 촌처녀」 등이었다.
1939년부터는 오케레코드사 전속단체인 조선악극단 소속으로 무대공연의 인기가수로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광복 이후 지방순회공연단체의 일원으로 객지생활을 하였고, 일가친척이 없이 쓸쓸히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