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도(八道圖)」의 제작자이다.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송곡(松谷)·삼탄(三灘). 소윤 이경(李卿)의 아들이다.
고려 우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조선 개국 후 태조에게 발탁되어 1392년(태조 1) 병조정랑이 되었다. 1394년 변중량(卞仲良)과 함께 정권과 병권의 분립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다가 순천으로 유배되었다. 1407년(태종 7) 양녕대군을 시종하여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벼슬은 사간에 이르렀고, 시문에도 능하였다. 그의 업적은 우리나라 지도발달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팔도도」의 제작에 있다.
「팔도도」는 1402년 제작되어 조선시대 최고(最高)의 지도로 평가되고 있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만든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의 조선팔도 부분에서 「팔도도」를 추정할 수 있다. 한반도의 윤곽이 비교적 정확한 세밀도이며, 독특한 산맥 표현방법과 조선 전기 지도제작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지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