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이강흡(李康洽). 충청북도 중원 출생. 아버지는 이기종(李起鍾), 어머니는 단인순(段仁順)이며 1남 6녀 중 외아들이다.
서울 보성중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유학 중 부친의 종용으로 귀국하였다. 윤명한(尹明漢)과 결혼 2남 1녀를 두었으나 6·25 때 사망하였다.
1930년대 초반 『전선』에 시 「피에로의 노래」, 「바다를 저주하는 어부」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 시작하였다.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좌익활동으로 구금되어 6·25 동란 중 전주 형무소에서 실종되었는데 사망·월북했다는 설도 있다. 실종되기까지 약 30편 정도의 시와 산문을 남겼다. 그의 시는 식민지시대 가난과 유랑의 문제를 주요 소재로 하여 시대의 비극성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 「무명초」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는 자신보다 가난하게 사는 약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는 도덕적 가책으로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고 좌익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에로의 노래」는 ‘구둘장 지고 누은 울 엄아 까마득이 대만미 한 되를 기달이듯’ xx(해방 : 필자) 오기만 웃어가며 탈박을 쓰고 탈춤을 추고 거리를 뒤지는 피에로의 눈물과 반항을 통하여 당시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무명초」·「난희야」는 북국으로 떠난 ‘이마받이’ 친구와 춘희와 옥분의 죽음, 술집으로 팔려간 소녀 이야기를 통해 시대적 고난과 비극을 고발하고, 「경마풍경」은 경마 복권에 충혈된 눈동자들과 제사공장의 여공들의 한숨을 대조시켜 시대적 가난을 남의 현실처럼 생각하는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울분과 비판을 보여준다. 또 「도시의 방랑자」는 깽깽이 켜는 눈먼 방랑자와 부도덕한 목사, 도색 시인 등을 대조시켜 유산계급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