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재난고 益齋亂藁≫ 10권과 ≪역옹패설 櫟翁稗說≫ 4권, 습유(拾遺) 1권으로 되어 있다. 고려 때에 간행된 초간본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조에 들어와 여러 차례 중간되었다.
≪익재집≫은 1432년(세종 14)에 왕명에 의하여 원주에서 중간하였다. 다시 1600년(선조 33)에 그의 11대손인 경주부윤 시발(時發)이 간행하였다.
그러나 판목이 낡아 알아볼 수가 없었다. 1693년(숙종 19)에 역시 경주부윤으로 있던 허경(許熲)이 선본(善本)을 구하여 다시 중간하였다.
시발이 중간한 간본에는 유성룡(柳成龍)의 발문(跋文)이 들어 있다., 허경이 중간한 간본에는 연보, 묘지명, 시문의 습유 들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 판본도 판목이 낡아 1814년(순조 14)에 경주에 거주하던 후손들이 연보 일부를 덧붙이고 습유를 첨가하여 간행하였다. 이 간본에는 김노응(金魯應)의 지(識)를 붙였다.
≪익재집≫은 1911년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파한집≫·≪보한집≫·≪아언각비 雅言覺非≫·≪동인시화 東人詩話≫와 합책하여 간행하였다. 1913년에는 일본 동경에 있는 민우사(民友社)에서 ≪역옹패설≫만을 영인하여 간행하였다.
1973년에 다시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大東文化硏究院)에서 순조 14년 간행본을 대본으로 하여 ≪하서집 河西集≫·≪매호유고 梅湖遺稿≫·≪파한집≫·≪보한집≫·≪근재집 謹齋集≫과 합본해서 ≪고려명현집 高麗名賢集≫(2)로 영인하고 간행하였다. 이 영인본에는 이춘희(李春熙)의 해제가 있다.
≪익재집≫은 197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대동문화연구원 영인본을 대본으로 하여 원문을 영인하여 수록하고 번역문과 함께 합본하여 국역총서로 간행하였다.
2책으로, 제1책에는 ≪익재난고≫ 권1∼8이 실렸다. 제2책에는 ≪익재난고≫ 권9·10, 그리고 ≪역옹패설≫ 전집과 후집, 습유가 수록되었으며, 부록으로 연보 등이 실려 있다. 번역문의 책머리에 장덕순(張德順)의 해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