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초기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1895년 5월 「외국어학교관제」가 공포되자 인천 감리(監理) 박세환(朴世煥)과 일본 영사가 정부에 건의하여 같은 해 6월 27일 인천 중구 내동에서 관립 한성외국어학교(漢城外國語學校) 인천지교(仁川支校)로 개교하였다.
수업연한은 3년이었고, 초대 교장에 박세환이 취임하였다. 당시 열강들의 문호개방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재원을 양성하기 위해서 일본어 외에 한문독서·한문작문·역사·지리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신교육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가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고관 및 지역 유지의 자제들만이 입학하여 1898년 5월 제1회 졸업생 9명을 배출하였다.
1904년 인천일어학교, 1912년 인천공립상업학교로 개칭하였으며, 교과목도 수신·국어·한문·수학·부기·상사요령·과학·상품지리·법제경제·체조·일본어 등으로 확대되었다. 1922년 3월인천 동구 송림동으로 교사를 이전하고, 같은 해 4월 5년제 갑종학교로 개편하였다. 1931년에는 일본인 학생만을 교육하던 인천남공립상업학교를 병합하였다.
광복 후 1946년 9월 6년제 인천공립상업중학교, 1951년 8월 3년제 인천고등학교로 개편하였다. 1971년 9월인천시 남구 주안동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라 상과를 폐지하고 인문계 33학급으로 편성하였다. 1992년 상과 3학급을 부활시켜 4년간 운영하였으나, 1996년 다시 폐지하였다. 2003년 10월 교육정보도서관을 개관하였다.
교훈은 ‘성실’이다. 학생 중심 교육,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 창의적 사고력을 신장하는 교육, 자율과 책무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도모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으로 1905년 을사조약에 항거한 동맹휴학, 1919년 3·1운동, 1930년대 항일독립투쟁 등을 벌여 민족의 독립정신 고취에 선봉이 되었다.
현재 미술부·관현악부·프라모델부·사진부 등 19개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고, 운동부로 정구·검도·육상·야구부 등이 전국대회에서 다수의 우승·준우승을 하였다. 특히 야구부는 1936년 7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여 한국대표로 일본의 고시원대회(甲子園大會)에 출전하였고, 1989년 황금사자기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 1995년 전국체육대회, 2005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최우수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하였다.
1995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백주년기념관을 건립하고, 『인고 100년사』를 발간하였다. 정기적으로 교지 『미추홀』과 학교신문 『인고춘추』를 발간하고 있다.
2009년 현재 44학급에 총 1,90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교직원은 100여 명이 재직하고 있고, 109회 졸업식을 거치면서 총 3만 323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