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금록 ()

목차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 미상 인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5년과 1914년 사이에 필사한 시문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 미상 인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5년과 1914년 사이에 필사한 시문집.
내용

6책. 필사본. 1865년(고종 2)∼1914년 사이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금록≫의 책1∼4에 서찰, 책5는 제문·전문(箋文)·예장(禮狀), 책6은 전령(傳令)·보장(報狀)·발사(跋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금록≫의 책1의 <순영상답시임연산 巡營上答時任連山>·<환곡봉창보장시상서 還穀封倉報狀時上書>·<군기수보사상서 軍器修補事上書>·<상작옥 上芍玉> 등은 1853년(철종 4) 5월에서 10월 사이의 기록이다.

≪일금록≫의 책2의 <순상이의정부초기대과기가일년사상서시재함평 巡相以議政府草記待瓜期加一年事上書時在咸平>·<김판서사동호판 金判書寺洞戶判>등은 1868년 1월에서 10월 사이의 기록이다.

≪일금록≫의 책3에는 1870년에 기록한 <이사민원납사상서운현 以四民願納事上書雲峴>, 1871년에 쓴 <영행중로승순상초오하서 營行中路承巡相初五下書> 등이 있다.

≪일금록≫의 책4에는 <삼십일승순상입칠답 三十日承巡相廿七答>·<조한림정희 趙翰林定熙> 등이 실려 있다.

≪일금록≫의 서찰은 작자가 보고자로서 순영의 일을 운현궁(雲峴宮)에 보고한 것이 많다. 당시의 크고 작은 사건과 민정의 정황, 그리고 주전(鑄錢) 등에 대한 작자의 주관적 판단과 객관적 정황이 함께 나타나 있다. 또, 운현궁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특정사건이나 민정에 대한 감찰·조사·점검·보고의 내용들도 있다. 또, 사동(寺洞)·재동(齋洞)에 거처하는 판서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단순한 안부 이상의 것들이라서 주목을 끈다.

≪일금록≫의 제문에는 1853년에 연산(連山)에서 쓴 <사직단기우제문 社稷壇祈雨祭文>이 있다. 전문은 대비전(大妃殿) 등에 올린 것이다. 예장은 1871년에 장성(長城)에 부임하여 순영(巡營)·병영(兵營)·통영(統營)·수영(水營)·방어영(防禦營) 등으로 부친 것이 있다.

≪일금록≫의 전령은 안협(安峽)에서 1865년에 쓴 것이다. 보장은 1868년에 함경도 문천에서 보낸 것이다. 내용은 당시 관청에서 민간 이권에 개입된 탐관의 부정행위를 조사한 것이다.

염업(鹽業)·시목(柴木) 등의 매매에 얽힌 관권의 개입과 조작, 피해를 입은 백성의 실태를 밝혀 놓았다. 북부지방의 지역적 특성에 관련된 부패상을 이해하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된다. 그밖에 함평에서 있었던 조적(糶糴)의 부정과 피해 및 그 처리과정, 1870년 무안에서 쓴 사보(辭報), 1872년에 장성에서 쓴 보초(報草) 등이 있다. 장서각도서에 있다.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