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비남(芾男). 승지를 지낸 임위(任瑋)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천재 소년 화가로 이름이 있었으나 17세에 요절하였다.
초상화의 재능이 뛰어나 『초상화첩(肖像畵帖)』3권이 전한다고 하나 현재 『칠분전신첩(七分傳神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 권이 알려져 있다. 이 초상화첩은 1749년(영조 25)과 1750년에 걸쳐 유지(油紙)에 그린 17점의 초본 형식(草本形式)의 초상과 1점의 유탄(柳炭)으로 그린 사본, 강세황(姜世晃)의 자화상 등 19점으로 꾸며져 있다.
수묵(水墨)과 연한 담채(淡彩)로 간략하게 사생(寫生)한 이 초상화들은 미숙하고 작품으로서의 격식이나 세련미는 없어도 정확한 관찰력과 묘사 능력을 지니고 있어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초상 초본마다 그의 아버지 임위가 인물에 대한 기록과 그리게 된 경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애절함을 밝혀 놓았다.
강세황은 임희수의 집안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임희수의 삼촌으로 시(詩)·서(書)·문장(文章)에 뛰어났던 임정(任珽)과는 처남과 매부 사이였다. 장지연의 『진휘속고(震彙續考)』에 의하면, 화첩에 포함된 강세황 자화상에 임희수가 가필을 하였더니 그림이 더욱 살아나 강세황도 탄복을 아끼지 않았다는 내용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