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인석부(單刃石斧: 단인돌도끼), 유구석부(有溝石斧), 유단석부(有段石斧: 턱자귀), 편인석부(片刃石斧: 편인돌도끼)라고도 한다. 간석기〔磨製石器〕의 하나이다.
마제석부는 인부(刃部)의 형태에 의해 양인(兩刃)과 단인(單刃)으로 구분된다. 단인은 인부를 대칭을 이루게 마연한 양인과는 달리, 한쪽을 직선 또는 호선으로 마연하고 반대쪽은 석기의 원면(原面)을 그대로 두거나 편평하게 마연하는 것이다.
이러한 단인수법은 석부 외에도 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의 인부제작에도 적용되었다. 석부는 기능에 의해 도끼(axe)와 자귀(adze)로 구분된다. 도끼는 무기로 쓰이거나 나무의 벌채(伐採)·절단(切斷)·절개(切開)용으로 쓰인 반면, 자귀는 도끼로 절단, 절개된 재목을 깎거나 다듬어서 기구(器具)나 구조물용(構造物用) 목재를 제작하는 도구이다.
이러한 석부의 용도에 따라 기능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자연히 도끼는 인부단면이 대칭인 양인으로, 자귀는 비대칭인 단인으로 제작된다.
이렇게 볼 때, 양인석부와 단인석부의 개념을 각각 인부의 양면과 한면을 마연한 석부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인부의 단면이 각각 대칭과 비대칭의 형태로 된 석부로 구분해 정의함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단인석부 중에는 인부 양쪽을 모두 정교하게 마연해 비대칭의 인(刃)을 만들기 때문이다.
단인석부는 단면이 비대칭이기 때문에 양인의 도끼와는 착병법(着柄法)이 다르다. 양인석부는 인선(刃線)과 목병선(木柄線)이 평행을 이루지만 단인석부는 직각을 이룬다.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 기원전 300∼기원후 300년)의 주거지에서 착병된 채로 발견된 예가 있다.
단인석부는 형태와 크기에 따라 명칭이 다양하다. 민무늬토기문화기에 한반도의 전역에서 사용된 대·소형의 석착(石鑿)과 북한학자에 의해 ‘턱자귀’라 불리는 석부 및 주로 남한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유구석부·유단석부가 모두 단인석부이다.
이 단인석부는 학자에 따라서 끌·대팻날·단인주상석부(單刃柱狀石斧)·소형주상석착(小形柱狀石鑿) 등 보다 세분된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단인석부는 신석기시대에 세계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시베리아 신석기시대의 단인석부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우리나라 빗살무늬토기문화기(서기전 4000∼1000년경)의 석착이다.
민무늬토기문화기(서기전 1000∼1년) 우리나라에서 발굴되는 유구석부·석착·턱자귀·유단석부는 중국 화남(華南)·동남아시아·태평양지역에 널리 분포한 남방계(南方系) 석기라고 생각되며, 중국의 신석기시대 앙소문화기(仰韶文化期, 서기전 4000∼서기전 2000년) 이래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농경의 전파통로를 따라 한반도에 전파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신석기시대에 있어서 단인석부의 성행은 도작농경문화(稻作農耕文化)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의 단인석부도 한반도 서부지방의 도작농경지대에 밀집된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후기에 이르러 도작농경과 함께 한반도 전역에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즉, 한국 팽이형토기 분포지역에서 발굴되는 자귀날도끼는 쌀과 함께 도작농경문화가 중국에서 유입되면서 전파되었을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단인석부는 청동제 자귀의 출현 후에도 계속 성행하였다. 서기전 300년을 전후해 우리 나라의 청동기문화와 함께 일본에 전파되었으며, 철제 자귀의 출현으로 소멸되었다.